[원·엔 환율 비상] "경제 좋아질거란 믿음이 없다…" 모든 세대가 지갑 닫아

박모(63)씨는 대기업 계열 직장에서 퇴임하고 5년 전부터 중소 제조회사에 파트타임 회계일을 보고 있다. 늦둥이로 키운 둘째 아들이 대학생이어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100세 시대에 따른 노후 대책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남들은 나보고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고 웬만큼 벌어 놓은 게 있다고 말하지만 경기(景氣) 전망이 어둡다 보니 돈을 쓰는 것보단 저축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그룹 계열사 영업사원인 이모(30)씨는 결혼 꿈을 접은 케이스이다. 취업 삼수 끝에 직장을 겨우 구했지만 서울 아파트 전세금만 3.3㎡(약 1평)에 1000만원을 넘어선 탓이다. 그는 "결혼 자금을 모으려면 꼭 필요한 지출 이외에는 소비를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 경제 소비 주체들의 '지갑 닫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의 저(低)성장 구조가 굳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처분소득에서 소비 지출의 비중인 소비 성향 지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평균 소비 성향은 최근 4년간 4.4%포인트(77.3%→72.9) 하락했다. 총소비의 3분의 1을 맡는 상위 20% 고소득층은 물론이고 60세 이상 고령층과 20~30대 젊은 층 등 거의 모든 세대에 확산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내수(內需) 침체를 촉발하는 소비 위축은 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 자신감 부재에서 증폭되고 있다"며 "대대적인 신산업 육성과 규제 개혁 등을 통해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3일 내놓은 '한국 경제 저성장 위기의 10가지 징후' 보고서에서도 소비 성향 하락이 핵심 상수로 꼽혔다.

전경련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투자·저소비 같은 패턴을 밟으며 20년 전 일본의 장기 불황 초입기를 닮아가고 있다"며 10가지 징후로 ▲GDP(국내총생산)에서 총투자 비중 감소 ▲국가 채무 급증 ▲물량 위주 수출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 등을 포함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금리 인하, 확대 재정 같은 전통적인 경기 부양책만으로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 탈출이 힘들다"며 "신산업 육성, 노동시장 개혁 등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불안한 경제 심리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