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시니어의 삶과 꿈을 들어보는 연재 칼럼 ‘CEO의 버킷리스트’. 그 두 번째 주인공은 패션계 ‘미다스의 손’에서 하이엔드 주얼리&워치 시장의 리더로 새롭게 발돋움하는 피아제코리아 정희정 지사장이다.
하이엔드 주얼리와 시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하는 피아제. 예술적인 디자인과 대담하면서도 창의력 넘치는 제품은 피아제의 정체성을 대변하며 주얼리&워치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해왔다. 특히 시계는 인하우스 공장에서 본체부터 브레이슬릿까지 100% 제작하고 있어 그 자부심이 남다르다.
정희정 지사장은 패션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만큼 수많은 브랜드를 성공시킨 인물로 우리나라 명품 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주인공이다. 겐조, 크리스찬 라크르와를 비롯해 코치, 프라다에 이르기까지 한번쯤 국내 명품업계를 휩쓸었던 태풍이 모두 그의 날갯짓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 상해에서 MCM 컨설팅 업무를 맡아 진행하며, 요 몇 년 사이 MCM이 중국에서 국민 브랜드로 사랑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4년에 피아제코리아로 부임한 이후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정희정 지사장. 치열한 패션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그의 경영 철학과 향후 계획, 그리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간직하고 있는 작은 꿈들을 함께 이야기해보았다.
여전히 가슴 뛰는 일상
인간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시즌마다 새로운 제품을 발표하는 패션계야말로 두근거림이 가득한 곳이지요. 예전에 패션쇼를 보러 파리, 밀라노로 출장을 갈 때면 항상 비행기 안에서 출장 자료를 리뷰하며 다음 날 있을 신상품 론칭에 대한 기대감으로 빨리 해가 뜨길 간절히 바라곤 했었어요. 그런데 그 설렘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피아제는 1년에 2회씩 140~200피스의 하이주얼리를 론칭할 만큼, 창조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가득한 브랜드였어요. 피아제 지사장 부임 이후 두 번의 컬렉션을 론칭했는데, 벌써부터 오는 6월에 있을 2017년 신상품 론칭 미팅에 출시될 상품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큽니다. 브랜드 창업자 조르주 에두아르 피아제의 철학인 “Do always better than necessary. – 언제나 완벽 그 이상을 추구하라”는 말처럼, 창의성과 대담함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바로 브랜드가 140여 년을 건재하며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비단 브랜드뿐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해도 좋을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저는 요즘 가슴 뛰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답니다.
소통하는 리더십
지사장으로 부임 후 첫해에 가장 먼저 ‘소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전임 외국인 지사장과는 아무래도 의사소통에 여러모로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부임 후 가장 먼저 전 직원들과 개별 인터뷰를 해서 어려운 점, 필요한 점, 직원들의 생각, 회사에 대한 바람 등 소중한 얘기를 많이 듣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이 듣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참여해서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생각하고 시도도 했지요. 그 노력 덕분인지 직원들이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 느끼고, 서로 상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일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실제로 좋은 결과도 많이 도출되었습니다. 매일 머리 맞대고 일하는 회사지만 소통의 부재로 인한 문제가 분명히 있게 마련이거든요. 사람 사는 맛은 서로 부대끼고, 느끼고, 웃고, 화해하며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
글로벌 브랜드를 국내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여러 가지 독보적인 장점을 로컬 마켓의 실정에 맞게 운영하는 게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저는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일단 시장에 필요한 브랜드의 움직임을 잘 포착할 수 있었고 대세의 흐름을 타서 방향을 전환한 덕분에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것 같아요. 경영 비결을 묻는다면, ‘모든 문제의 핵심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명품업계에서 하이주얼리&워치 시장은 일반 패션시장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리테일이라는 면에서는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두드러진 차이는 계절성이 없다는 점이겠네요. 워치&주얼리는 상대적으로 계절에 대한 구분은 크지 않지요. 요즘 트렌드인 ‘Slow Culture’에 가장 부합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닐까 싶네요.
힐링을 원한다면 바쁠수록 멈추어라
요즘처럼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적인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음악과 미술작품 관람이 큰 치유와 기쁨이 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남편의 영향이 큽니다. 남편이 제게 준 첫 선물이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쓴 <서양 미술사>라는 책이에요. 두 번째 만났을 때 받은 거죠. 그때부터 ‘이 사람과 즐겁게 오래 살려면 미술과 음악을 함께하면 도움이 많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예술을 가까이 하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생겼습니다. 최근에 오페라 감상에 푹 빠졌는데, 오페라를 관람하며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노래하는 재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계기가 된다면 소질 유무를 떠나서 성악을 한번 배워보고 싶습니다.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 항상 생각하는 게 ‘참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다’ ‘참 부럽다’ ‘나도 한 번쯤은…’ 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이유로 성악에 대한 도전을 살며시~ 저의 버킷리스트에 포함해봅니다.
보다 대중적인 도전곡으로는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regrette rien’도 마스터해보고 싶어요. 이 노래를 듣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노래는 꼭 한번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거든요. 참고로 저는 정말 노래에 소질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곡만 열심히 공략하면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찬송가도 립싱크하는 저희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그 뒤로 희망이 생겼달까요? 재미있는 얘기로, 저희 남편은 노래방에 가면 팝송을 한답니다. 영어를 잘해서? 절대 아니죠. 팝송을 틀면 동료들이 가사에 집중하느라 누가 어떻게 노래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네요. 나름 남편의 사회생활 비법이랍니다. 하하.
버킷리스트는 인생의 윤활유
저는 예전부터 ‘호기심 천국’이라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많고 공사다망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나 계획을 크게 나이별로 나열해보면, 30살에는 결혼계획을 하고, 32살에는 자녀계획을, 45살에는 회사의 대표가 되고, 50대에는 직접 집을 지어보고, 60살 이후에는 세계일주를 하며 나만의 여행 일지를 남기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그런데 40대까지는 감사하게도 굵직한 것들은 달성을 했답니다. 그 밖에 소소한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처음으로 달성한 버킷리스트는 ‘부모님을 떠나 독립생활을 해보는 것’이었어요. 그 소원은 대학 2학년 때 이루어졌죠. 당시 3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수를 빌미로 여행을 했었거든요. 독립하면 하고 싶었던 많은 것을 해봤고, 처음으로 김치도 담가봤어요. 그때 이후 결혼할 때까지 꼼짝없이 부모님 그늘에서 지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가장 짜릿한 일탈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또 하나, 소녀시절의 버킷리스트는 ‘중국어 배우기’였어요. 요즘은 K-팝과 한류가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제가 사춘기였던 시절에는 홍콩 누아르가 대세였거든요. 홍콩의 4대천왕이 인기 절정이었고, 장국영, 양조위, 곽부성, 유덕화 등의 영화를 보기 위해 수업을 빠지고 극장에 가기도 했죠.
그때 막연히 중국어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그게 광동어인지 북경어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은 동경심. 저는 지금 한류에 빠져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2011년, 역사적인 순간이 왔어요. 온 가족이 2년간 중국에 갈 기회가 생겨 가장 먼저 중국어학원에 등록을 했답니다. 열심히 해서 중국어 수위평가도 보고, 중국 시장 가서 가격 흥정까지는 가능한 수준은 되었어요. 일단 제가 그리던 광동어는 아니지만 늦게나마 중국어 입문에 성공, 미션 클리어입니다.
이처럼 버킷리스트는 사회 생활이나 일상에 큰 활력을 주는 것 같아요. 굳이 버킷리스트라 거창하게 정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하나 이뤄갔을 때, 거기에서 오는 달성과 창작의 기쁨은 인생에 충분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버킷리스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분들은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고, 평상시에 메모하듯, 일기 쓰듯, 하나씩 적어놓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막연히 생각만 할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이룰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피아제
피아제에 조인한 후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겼어요. 피아제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패트리모니 전시(Patrimony Exhibition)를 한국의 전통과 접목해서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피아제의 빈티지 마스터피스를 아직 국내에 선보일 기회가 없었어요. 피아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이를 통해 아직까지 피아제라는 브랜드가 친근하지 않은 대중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의 자리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정말 재미있는 해가 될 듯합니다. 25년 전 1990년에 론칭해 회전하는 두 개의 링이라는 아주 특별한 콘셉트로 주얼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포제션(Posession)’이 다시 커다란 주목을 받을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영화 <인터스텔라>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의 신예 연기파 여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이 올해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되면서 삶을 즐기는 당당한 여성의 대명사로 포제션과 함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포제션의 글로벌 론칭 시기인 5월에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피아제의 새로운 모습을 접할 수 있는 신선한 행사를 여럿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피아제가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