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低 빨간불 켜진 수출株들, 아직은 괜찮지만…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이틀째 100엔당 900원을 밑도는 등 최근 엔화 약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원화에 비해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경우 자동차나 석유화학, 철강, 전자제품 업종 등 주요 수출주들이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주로 경쟁하는 이 업종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엔화 약세 피해주'로 꼽혔던 이 업종들의 주가는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전망이 늘고,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몰리면서 주가가 최근 몇 달간 상승한 종목이 많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계속 빠르게 하락할 경우, 수출주들의 실적도 결국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환율 흐름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100엔당 원화 환율 이틀째 890원대

지난 28일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00엔당 898.56원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100엔당 90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7년 2개월 만이다. 29일에도 899.19원을 기록, 이틀째 900원을 밑돌았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로 돈을 푸는 '아베 노믹스'를 가동하면서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최근 달러화 강세가 주춤해져 원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상승한 반면 엔화는 일본 신용 등급 강등 등 악재 때문에 별다른 영향이 없어,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다시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일본과 주로 경쟁하는 주요 수출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석유화학주인 LG화학은 100엔당 원화 환율이 900원 밑으로 떨어진 28일 주가가 상승 마감했고, 29일에도 강세를 보였다. 최근 두 달간 상승률은 20%에 이른다. 롯데케미칼과 한화케미칼도 두 달간 각각 34.65%, 25.53% 상승했다.

자동차 업체들의 주가도 눈에 띄는 변동이 없었다. 현대자동차는 사흘 연속 약세를 보이긴 했지만, 두 달간 6.54% 올랐고, 기아자동차도 11.43% 상승했다. 엔화 표시 부채가 많아 엔화 약세 국면의 수혜주로 꼽히는 한국전력과 롯데쇼핑, 포스코 등도 이달 들어 강세를 보였다.

◇환 헤지 전략에 과거 비해 영향 작아

전문가들은 유럽과 중국 등의 잇따른 통화정책 완화로 글로벌 경기가 점차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엔저 피해를 보는 업종으로 꼽혔던 수출주들이 과거에 비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최근 국내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계속 들어오면서 경기 민감주들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는 점도 자동차나 석유화학주 등이 상승한 이유로 꼽힌다.

윤영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약세를 보여야 일본 상품의 상대적인 매력이 부각될 수 있지만, 최근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 하락은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 증가로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국내 수출주의 국제 경쟁력이 부각되는 것으로 평가돼 엔화 약세에 따른 충격을 거의 받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현대차와 기아차 등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늘리고, 엔화 약세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가동하고 있는 점도 '엔화 약세 피해주'들의 주가가 크게 흔들리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높은 환율 변동성, 엔저 속도가 문제

다만 엔화 약세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경우 결국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하반기에 일본이 추가 경기 부양책을 가동하면서 엔화 가치가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엔화 가치가 연평균 100엔당 900원이 될 경우, 석유화학 수출이 13.8%, 철강 수출이 11.4%, 자동차 수출은 7.6% 각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외국인의 국내 증시 투자가 점차 줄어들 경우 수출주들의 실적 악화 우려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