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과거의 영이 누군가를 찾아온다. 과거가 마치 현재처럼 눈앞에서 일어난다. 그런 체험을 통해 진실을 직면한 가공 인물이 있다. 스크루지다. 과거와 똑같은 생리적 눈으로 과거와 똑같은 일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미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또 다른 예가 있다. 똑같이 과거의 영이 찾아왔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어제의 그 꽃만을 집착해 오래 바라보면 이른바 ‘맥도날드 할머니’가 된다. 그런 착각과 오해가 은퇴의 거울에 깃들어 추억의 포토샵 질을 못하도록 뿌리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금풍(金風)에 나뭇잎은 떨어진다. 금풍은 혹독한 계절이 다가올 거라고 포고하는 전령자다. 겨울은 분명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아는 게 하나 더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그런 길을 알고 걷는 사람들이 있다. 은퇴의 거울에 집착해 떠나지 못하고 몽롱한 환상을 머무는 것은 위험한 소용돌이에 나를 맡기는 거다. 아무리 거대한 선박도 그런 흐름 속에서 안전하기는 어렵다.
다시 거울을 생각해본다. 거울과 거울 사이에 끝도 모르게 반복될 과거의 모습에 반추해봐야 진실보다는 가공의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할 뿐이다. 지금 이대로를 직면하는 것, 어쩌면 우리는 스크루지처럼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기 위해 그리해야 할지 모른다. 벚꽃처럼 기쁜 날이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