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달렸나? 글로벌 증시 일제히 숨 고르기

세계 증시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일제히 주가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증시 버블(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증시 관계자들은 "세계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보긴 아직 이르지만, 상승세가 둔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 주식형 펀드 매니저들은 재빠르게 투자 지역과 투자 종목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빨간불 켜진 해외 증시판

지난주(4월 27일~5월 2일) MSCI 세계지수는 0.8% 떨어졌다. MSCI 선진국지수와 신흥국지수는 각각 0.7%, 1.4% 떨어졌다. 선진국이고 신흥국이고 가릴 것 없이 하락세를 탄 것이다. 인도네시아 증시의 하락률이 6.4%로 두드러졌다. 프랑스와 독일 증시의 하락률도 3.0%를 기록했다. 홍콩과 중국 증시가 주간 단위로 상승했지만, 이 증시들도 5일 이후에는 하락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5일 4%가량 떨어진 데 이어 6일에도 1%가량 떨어진 채 장을 마쳤다. 홍콩 항성지수도 이틀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유진투자증권 박석현 연구원은 "세계 증시 상승세가 둔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별 악재와 높은 상승률 부담

우선 국가별로 악재가 여럿 등장했다. 유럽 증시에서는 그리스의 구제금융 협상이 난항을 보이고 있다. SK증권 관계자는 "그리스 협상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면서 유럽 증시가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과열된 증시 분위기를 식히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KR선물 서상영 이사는 "중국 정부가 주식 거래를 할 때 넣어야 하는 증거금률을 높이도록 증권사들에 권고했다는 소식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오를 만큼 올랐다는 투자자 심리도 반영됐다. 중국 상하이지수는 올해 7년 만에 4000선을 돌파했다. 미국 나스닥지수는 15년 만에 5000선을 넘었다. 유럽 증시도 올해 연이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룸 투자자문 조세훈 대표는 "연일 주가지수가 올랐다는 소식에 다들 피로감이 커졌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뉴스도 모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처 바꾸는 매니저들

펀드매니저들은 이 같은 분위기에 발맞춰 투자처를 바꾸고 있다. 국내 A자산운용사의 글로벌 자산운용본부장은 "2주 전엔 유럽 증시에서 돈을 뺐고, 지난주엔 중국 증시에서 돈을 뺐다"며 "그래도 채권보단 주식이 낫다는 판단에 뺀 돈 일부를 러시아 증시에 넣었고 나머지는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B자산운용사 대표도 "지난주 홍콩에 다녀왔는데 글로벌 증시에 투자한 금액을 조금 덜어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돼서 돌아오자마자 투자 포트폴리오를 좀 바꿨다"며 "일단 해외 증시 비중을 확 줄였다"고 말했다.

상황이 불안해도 증시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자금은 안전한 증시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톰슨로이터가 글로벌 자산운용사 5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본 결과, 지난달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유럽 증시에서 돈을 빼고 미국 증시에 돈을 더 넣은 것으로 집계됐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4월 자산운용사들이 유럽 증시에 투자한 금액은 3월보다 0.7%포인트 줄었다. 대신 미국 증시에 투자한 금액은 1.8%포인트 늘었다.

KDB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유럽 증시의 시가총액이 미국 증시 수준으로 커지면서 '유럽 증시는 이미 오를 만큼 올랐고 앞으로는 미국이 낫다'고 판단하는 펀드매니저들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