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한옥이 아직…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추억이…
입력 : 2015.05.14 04:00
서울 '예지동·장사동'
옛날에, 그러니까 이산(李蒜)이라는 청년이 왕(정조)이 된 지 20년 되던 해(1796년) 여름. 한양의 좌포장(左捕將) 신응주가 갑자기 한밤중에 사람을 모아 효경교(孝經橋)라는 돌로 만든 멀쩡한 다리를 헐어버렸다. 너무나도 엉뚱한 사건에 큰 소란이 났다. 이에 당시 국정을 총괄하던 기관인 비변사에서는 왕에게 무거운 처벌을 청하고 왕은 신응주를 파직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다리를 헐어버린 이유는 신응주의 동생 신홍주가 어느 날 효경교를 지나다 낙상을 해서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실만 적어놓아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동생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게 각별했던지 아니면 평소에 효경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었던지 이유야 있었겠지만, 말도 못 하는 다리가 무슨 죄인가. 이에 연루되어 당시 훈련대장이던 이한풍마저 야금(夜禁)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직당했으니 당시로는 굉장히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안고 있던 효경교는 종로 3가와 청계천 사이 세운상가 옆 사선 방향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다리였다. 지금은 청계천이 복개되었다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예지동으로 들어가는 문과도 같은 다리였다.
예지동과 장사동은 종로 3가와 4가 사이, 종묘와 청계천 사이에 있는 동네다. 우리가 세운상가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 동네가 이 주변이다. 사실 세운상가는 그 동네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긴 건물일 뿐이고, 그 주변은 어엿한 이름이 따로 있는 오래된 동네이다. 예전부터 장신구를 파는 옥방골이 있었고, 육의전 인근이었으므로 상당히 활기가 넘치는 동네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지금 배오개길이라 부르는 큰 도로가 동네를 가르고, 2차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공습에 대처한다며 소개 도로라는 큰길을 내는 바람에 동네가 여러 토막으로 나뉘었다.
그 안에는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골목들이 있고, 100년도 훨씬 넘은 한옥들이 아직도 잘 살아남아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나며 동네가 부침하는 와중에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 안에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3만 개 넘는 가게가 있었다. 장신구를 팔던 옥방골은 시계, 반지 등 귀금속이나 결혼 예물을 파는 거리가 되었고,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모인 다양한 전자제품 판매점과 조명 가게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길 바깥으로 내놓은 좌판에도 각종 계산기, 카세트테이프, 녹음기 등이 쌓여 있었고, 그 안으로 더 들어가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레코드판을 복제해서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래서 살 여력이 없었던 학생 시절에도 물건을 구경하러 가서 좁을 골목을 이리저리 누볐다. 없는 것이 없는, 마치 요지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곳이었고,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전선으로 가리고 비 새는 지붕을 천막으로 덮어버려 뒤떨어진 모습으로만 보이는 까닭에 그 동네 가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며 그 좁지만 찬란했던 골목에도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신기한 물건들은 세운상가가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로 자리를 옮기고, 이제 그곳은 마치 영혼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하다.
더군다나 틈만 나면 그 동네를 갈아엎고 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를 세워 새로운 동네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해서,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이 오래된 동네의 생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몇 년 전, 우리 사무실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 건축과에 다니는 학생이 인턴으로 몇 개월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인턴 기간을 마칠 즈음 서울을 구경시켜 주려고 종묘와 세운상가 일대를 같이 답사했다. 종묘를 한 바퀴 돌고 길을 건너 예지동 골목길을 답사하기 전에 세운상가 2층 데크로 올라갔다. 그 위에 오르면 동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설명해 주기가 좋아서였다. 학생과 눈앞에 펼쳐진 예지동과 장사동을 내려다보며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참에, 그 건물 경비하시는 분이 나에게 오더니 따지기 시작했다.
요지는 "왜 외국인에게 이런 누추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동네가 서울의 역사를 말해주는 오래된 곳이라 무척 가치 있다고 설명했으나, 그는 말을 끊으며 절대 안 된다고 막아섰다. 적당히 피해서 세운상가 안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다른 장소를 찾으려 했지만, 집요하게 쫓아오는 바람에 결국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런 오래되고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도시 안의 길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설명할 길이 없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일반적으로는 세운상가 인근 동네는 남에게 절대 보여주면 안 되는 치부인 모양이다.
오래된 골목에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 동네 임대료가 올라서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오르내린다. 다른 한쪽에선 골목이 오래되고 뒤떨어지고 냄새나고 위험하다며, 동네를 통째로 깔아뭉개고 네모반듯한 건물과 자로 금을 그은 것처럼 반듯한 길을 내려고 한다. 어디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곳이고, 또 어디는 남들 볼까 두려운 치부라니, 그렇게 나누는 기준은 과연 무엇이며, 그 안에는 어떤 심리가 있는 것일까.
세운상가를 허물고 녹지 축을 만들겠다며 건물 일부를 썰어내기도 했고, 그 많은 가게를 옮기겠다며 외곽에 대형 유통센터를 짓기도 했다. 지금도 개발 계획을 끊임없이 세우고 있는 그곳에서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 누구도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동안, 몇 겹 천막으로 덮였던 오래된 집들과 오래된 길들은 어느새 다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들어보니 다리를 헐어버린 이유는 신응주의 동생 신홍주가 어느 날 효경교를 지나다 낙상을 해서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실만 적어놓아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동생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게 각별했던지 아니면 평소에 효경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었던지 이유야 있었겠지만, 말도 못 하는 다리가 무슨 죄인가. 이에 연루되어 당시 훈련대장이던 이한풍마저 야금(夜禁)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직당했으니 당시로는 굉장히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안고 있던 효경교는 종로 3가와 청계천 사이 세운상가 옆 사선 방향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다리였다. 지금은 청계천이 복개되었다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예지동으로 들어가는 문과도 같은 다리였다.
예지동과 장사동은 종로 3가와 4가 사이, 종묘와 청계천 사이에 있는 동네다. 우리가 세운상가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 동네가 이 주변이다. 사실 세운상가는 그 동네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긴 건물일 뿐이고, 그 주변은 어엿한 이름이 따로 있는 오래된 동네이다. 예전부터 장신구를 파는 옥방골이 있었고, 육의전 인근이었으므로 상당히 활기가 넘치는 동네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지금 배오개길이라 부르는 큰 도로가 동네를 가르고, 2차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공습에 대처한다며 소개 도로라는 큰길을 내는 바람에 동네가 여러 토막으로 나뉘었다.
그 안에는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골목들이 있고, 100년도 훨씬 넘은 한옥들이 아직도 잘 살아남아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나며 동네가 부침하는 와중에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 안에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3만 개 넘는 가게가 있었다. 장신구를 팔던 옥방골은 시계, 반지 등 귀금속이나 결혼 예물을 파는 거리가 되었고,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모인 다양한 전자제품 판매점과 조명 가게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길 바깥으로 내놓은 좌판에도 각종 계산기, 카세트테이프, 녹음기 등이 쌓여 있었고, 그 안으로 더 들어가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레코드판을 복제해서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래서 살 여력이 없었던 학생 시절에도 물건을 구경하러 가서 좁을 골목을 이리저리 누볐다. 없는 것이 없는, 마치 요지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곳이었고,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전선으로 가리고 비 새는 지붕을 천막으로 덮어버려 뒤떨어진 모습으로만 보이는 까닭에 그 동네 가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며 그 좁지만 찬란했던 골목에도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신기한 물건들은 세운상가가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로 자리를 옮기고, 이제 그곳은 마치 영혼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하다.
더군다나 틈만 나면 그 동네를 갈아엎고 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를 세워 새로운 동네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해서,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이 오래된 동네의 생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몇 년 전, 우리 사무실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 건축과에 다니는 학생이 인턴으로 몇 개월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인턴 기간을 마칠 즈음 서울을 구경시켜 주려고 종묘와 세운상가 일대를 같이 답사했다. 종묘를 한 바퀴 돌고 길을 건너 예지동 골목길을 답사하기 전에 세운상가 2층 데크로 올라갔다. 그 위에 오르면 동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설명해 주기가 좋아서였다. 학생과 눈앞에 펼쳐진 예지동과 장사동을 내려다보며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참에, 그 건물 경비하시는 분이 나에게 오더니 따지기 시작했다.
요지는 "왜 외국인에게 이런 누추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동네가 서울의 역사를 말해주는 오래된 곳이라 무척 가치 있다고 설명했으나, 그는 말을 끊으며 절대 안 된다고 막아섰다. 적당히 피해서 세운상가 안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다른 장소를 찾으려 했지만, 집요하게 쫓아오는 바람에 결국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하지만, 이런 오래되고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도시 안의 길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설명할 길이 없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일반적으로는 세운상가 인근 동네는 남에게 절대 보여주면 안 되는 치부인 모양이다.
오래된 골목에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 동네 임대료가 올라서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오르내린다. 다른 한쪽에선 골목이 오래되고 뒤떨어지고 냄새나고 위험하다며, 동네를 통째로 깔아뭉개고 네모반듯한 건물과 자로 금을 그은 것처럼 반듯한 길을 내려고 한다. 어디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곳이고, 또 어디는 남들 볼까 두려운 치부라니, 그렇게 나누는 기준은 과연 무엇이며, 그 안에는 어떤 심리가 있는 것일까.
세운상가를 허물고 녹지 축을 만들겠다며 건물 일부를 썰어내기도 했고, 그 많은 가게를 옮기겠다며 외곽에 대형 유통센터를 짓기도 했다. 지금도 개발 계획을 끊임없이 세우고 있는 그곳에서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 누구도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동안, 몇 겹 천막으로 덮였던 오래된 집들과 오래된 길들은 어느새 다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