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 내린다… 한국 '女優비'

살인범의 애인과 형사가 서로에게 끌리다 파국으로 치닫는 하드보일드 멜로 '무뢰한'(감독 오승욱)과 임신한 채 뇌사 상태로 병원에 실려온 젊은 여성의 과거를 뒤쫓는 미스터리 드라마 '마돈나'(감독 신수원)가 13일 개막한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했다. 여배우가 주도하는 한국영화가 최근 드물어 더 반갑다. 칸 영화제 이 부문은 홍상수(하하하)와 김기덕(아리랑) 감독이 대상을 받는 등 한국영화와도 인연이 깊다.

◇무뢰한: 파멸로 돌진하는 거짓말

끝내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남녀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다. 대개 사랑했단 걸 깨달을 땐 이미 늦다. 재곤(김남길)은 범인 검거를 위해 뭐든 하는 형사다. 보스의 여자였던 혜경(전도연)을 위해 살인을 한 준길(박성웅)을 잡으려 재곤은 혜경이 있는 룸살롱 영업부장으로 잠입한다. 뜻밖에 재곤은 그녀의 고단한 외로움에 끌리고 혜경의 마음도 재곤을 향해 기운다. 그러나 거짓이 삶의 양식인 하류 인생의 세계에서 인간다움의 미덕은 종잇장처럼 얇고 무력하다. 축축한 위선과 악취 나는 속임수, 섹스와 폭력으로 부대끼다 각자 파멸을 향해 돌진한다.

전도연은 치우치거나 넘치지 않으며 노련하게 완급을 조절한다. 양주를 들이켜며 으적으적 얼음을 씹는다. 남자 몸의 칼자국을 더듬으며 "상처 위에 상처, 더러운 기억 위에 또 더러운 기억…"이라고 낮게 웅얼거린다. '밀양'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름값에 걸맞은 혼신의 연기다. 이미지를 맛깔나게 구성할 줄 아는 오승욱 감독의 재기는 여러 장면에서 돋보인다. 특히 재곤과 준길의 격투 시퀀스는 암컷을 놓고 다투는 맹수들처럼 거칠면서도 우아하다. 데뷔작 '킬리만자로' 이후 15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든 오 감독은 "방구석에 장전된 채 오래 표류하던 시나리오를 마침내 영화로 만들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마돈나: 몰락을 부르는 작은 균열

평범한 일상이란 실은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서 있다. 천칭 저울의 어느 한쪽에 바늘 하나쯤의 균열을 얹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무너져 내린다. 20일 칸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마돈나'의 신수원 감독은 그 균열과 붕괴를 손에 잡히도록 그려낼 줄 아는 독창적 장인(匠人)이다.

간호조무사 해림(서영희)이 일하는 병원에 정체불명 노숙자 미나(권소현)가 뇌사 상태로 실려온다. 심장 이식을 원하는 환자 가족과의 거래를 통해 여자의 과거를 좇던 해림은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이 여자의 비밀과 맞닥뜨린다. 신 감독은 "늘 루저(loser·실패자)들에게 관심이 간다. 타인의 의지에 의해 설 땅이 점점 좁아져 결국 정상적 삶에서 내쫓기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했다.

신 감독은 전작 '명왕성'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 14 플러스' 부문 특별언급상을, 단편 '순환선'으로 칸 비평가주간 카날플러스상을 받았다. 올해도 수상 기대가 높다. 사범대를 나와 교사를 하다 영화감독이 된 그녀는 "실은 칸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산 하나를 넘은 듯한 기분이다. 내 영화가 '주목할 만한 부문'에 초청됐다는 기사를 본 친구가 '왜 돈은 못 벌고 맨날 주목만 받느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올해 칸에는 김혜수·김고은 주연의 누아르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이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신인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올라 있고, 고아성 주연의 스릴러 '오피스'(감독 홍원찬)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으로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