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이 따뜻해졌다. 가까운 관악산에 오르는 오롯한 길가엔 바위며 꽃이며 나무들도 나만큼 따스함을 즐기고 있다. 봄을 오르내리는 사람 모두 노래하듯 몸놀림이 가벼워 보인다. 살랑 바람결에 얹혀보는 흥얼거림. 허! 이는 이미 내 소리가 아닌 듯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소리, 무엇이 또 아쉬웠을까, '봄날은 간다' 한 소절이 제 몸을 붙잡다가 나직이 발에 꼭 밟힌다.
보이는 모두는 나처럼 노래를 하고 있을까? 괜스레 뜬금없는 멍청한 생각에 발길을 멈췄다. 봄이 또 가니, 그만큼 멍청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막 두 팔 벌리는 풀숲으로 스몄다. 하늘이 몸으로 내려오는가. 뉘 모르게 주저앉는 사이, 풀향이 가슴마저 눕게 한다. 물론 올해도, 지난봄처럼, 오는 봄 가는 봄 또 느껴서만은 아니다. 계절과는 상관없는 듯. 하필 봄 뒤 따라오다 보니, 예전보다 나이가 몇십 살 더 들었구나 하고 확인해서도 또 아니다.
아직 남은 또 다른 봄날들을 누구와 더불어, 어떤 방법으로 내 것을 만들어야 할까. 이 봄도 나도 그저 손에 닿는 것과 어울려 살라 하는데, 이도 지나가는 바람결에 보이는 문구 같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멍청해지는 걸까. 이도 결국 아니다. 단, 몇 초지만, 나를 위해 나에게 나를 내게 던지면 어떨까. 그럴싸하다. 또, 몇 초지만, 그 뉘를 위해 나를 마음껏 내놓으면 어떨까. 이도 그럴듯하다. 어쩔꼬, 결코 이도 아닌 것을….
오늘도 내 역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 순간들이 이 봄 내 하늘에도 구름 틈틈 몇몇 기웃거린다. 살면서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이란, 그랬다, 내 밥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다. 숨 쉴 곳, 편히 쉬고 잠자고 노는 곳, 이 나만의 곳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꿈과 미래란 현재로부터 시작되고, 현재는 지난 시간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지난 시간에 무디어진 이유로 또 혼돈의 지금이 되곤 하는, 또 지금은 봄이다. 그럴까, 할 일이 줄어들어서일까, 멍청하게 서있는 것은….
멍청함을 어떤 느낌일지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까뮈 혹은 그의 뫼르소도 한 번은 이런 멍청함에 빠져보았을까. 그들도 어떤 일이나 움직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을까.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저마다 나도 살아있다며, 손드는 사람들. 허! 나와 상관없이 산 중턱 지나는 사람들을 본다. 그래, 그저 자연의 현상들이 저들과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일 뿐. 나를 포함해 그 어떠함이라고 정의내리지 않는 일만이 살아있기 위한 유일함일 뿐. 지금, 이 느낌이 멍청함?
고맙게도, 나에겐 가끔 이 멍청함이 세상 모두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원컨대, 이래저래 지금을 산다는 것은, 또한 살아진다는 것은, 뭐 흐르는 바람이거나 시간이거늘, 입술 언저리 숨결의 하나이기를 바라본다. 봄이 간다고 투덜대던 그 많은 말, 밥벌이해야지, 또 일해야지, 뭐 이러저러한 말들도, 내가 하고 또 들으며 손짓 훨 한 번 하기를 또 바라본다. 훨, 한 번에 사라지도록. 분명, 어느 순간, 어떠한 일이든 하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