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惡意에 무너져가는 인간, 칸이 주목하다

한국에서 온 작고 강렬한 영화에 칸이 호평 일색으로 화답했다.

20일 오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본부인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 1068석 극장 드뷔시 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한국영화 '마돈나'(감독 신수원) 상영이 끝나자, 심사위원장인 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를 비롯한 관객들이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을 둘러싸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칸에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영화는 상영 뒤 기립박수를 받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올해 칸에선 화제작들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실망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화제작이 없는 게 화제"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지명도 떨어지는 저예산 독립영화 '마돈나'가 받은 기립박수와 호평은 그래서 이례적이었다. 시상식(24일)을 얼마 안 남긴 칸에서 '마돈나'는 이날 첫손에 꼽힌 화제작이었다.

◇"또 한 번의 도약 이뤘다"

현지 평단의 반응과 리뷰도 호의적이다. 영화제 공식 일간지인 '스크린 데일리'는 "신 감독은 용기 있게 한국 사회 내부 문제를 마주한 이번 영화로 한국 대표 여성 감독의 입지를 굳혔다. 매우 도전적이며 흡인력 있는 공명을 일으켜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라 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자칫 흔한 장기 이식 소재의 스릴러로 빠질 수 있었던 흐름을 영리하게 극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으로 직접 파고든다. 신 감독과 서영희가 칸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뤘다"고 전했다. 신 감독은 2012년 단편 '순환선'으로 비평가주간 카날플뤼상을 수상했고, 서영희는 2010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주연 배우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탈리아 안사 통신은 "마돈나는 칸에서 '제2의 경쟁 부문'이라 불리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버라이어티'도 "신수원의 꿈이 이뤄지다"는 제목으로 신 감독 인터뷰를 비중 있게 다뤘다.

◇'악의에 잠식되는 인간' 그려

'마돈나'는 작은 악의(惡意)들이 어떻게 한 인간을 말살하는지 집요하게 탐구한다. 버림받은 아이들, 교실 붕괴, 비정규직 문제, 직장 성폭력, 졸부의 갑질 같은 사회 병폐를 한 여자의 망가진 삶을 렌즈 삼아 들여다보는 현미경 같다. 감독은 세상에 과연 선의가 존재하는지 회의하도록 관객을 몰아붙인다. 설명적 대사 대신 클로즈업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으로 극적 긴장을 축적해간다. '마돈나'라는 별명의 임신한 뇌사 환자 미나를 연기한 권소현은 "폭식 습관이 있는 미나를 표현하려고 14㎏을 찌웠었다"고 했다. 미나의 과거를 쫓는 간호조무사 역할의 서영희는 "이렇게 말 없이 말해야 하는 역할을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마돈나'는 표현 수위가 매우 높고 메시지도 격렬하다. 한국 영화가 금기시해온 소재를 날것 그대로 다루는 장면도 많다. 신 감독은 이날 상영 전 무대 인사에서 "제목이 마돈나지만 (가수) 마돈나는 안 나온다. 대신 제가 춤을 보여드리겠다"며 막춤을 춰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