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이라도 잘못되면, 나는 끝"

"한 권이라도 잘못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

"(취미인) 카지노는 이제 거의 찾지 않는다. 하루의 99.9%는 소설 생각만 한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64)는 진지함과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철도원' '장미 도둑' 등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가 있는 아사다 지로는,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을 벌이고 있는 현역 작가. 1991년 데뷔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100권의 책을 썼다고 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와 SBS문화재단의 '방송작가 마스터 클래스'에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 소설가를 21일 만났다.

'한 권이라도 잘못되면 끝'이라는 마음가짐은, 100권의 책을 쓰는 동안 포기하지 않은 원칙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왔다. 독자는 그 100권 중에서 어느 책으로 자신의 소설 읽기를 시작할지 모르는데, 집어든 책이 마음에 안 든다면 나머지 99권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 결국 원칙은 모든 소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매 순간 소설 생각만 한다'는 믿기 힘든 고백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나온 유머다. 문학의 위축 시대에 대처하는 작가의 자세랄까. 자신의 청년 시절에는 소설 말고는 즐길거리가 없었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게임과 TV와도 대결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래도 결국 살아남는 방법은 TV와 게임보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밖에 없다는 것. 맞는 말이지만, 젊은 후배 작가들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현역인 선생의 노력과 준비에는 뭐가 있느냐"고 짐짓 무례하게 물었다. '매 순간 소설'은 그 직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놓은 대답이다. "카지노는 0.01%, 소설이 99.9%"라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 카지노를 섭렵한 아사다 지로는, '세계 카지노 문화기행' 시리즈를 썼을 만큼 소문난 카지노광이다.

긴장이 풀린 듯, 작가는 자신의 창작 비밀도 슬쩍 공개했다. 자신의 책상에는 늘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의 시집이 놓여 있다고 했다. 문장과 이야기의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으면, 늘 그의 시 한 편을 읊는다면서.

할리우드 스타처럼 빡빡한 일정 탓에 가능했던 인터뷰 시간은 20분. 마지막으로 두 가지 즐거움에 대해 물었다. 소설 쓰기는 당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 그리고 당신의 독자에게는 어떤 즐거움을 주기를 바라는가. 그는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했다.

"특정 메시지나 즐거움을 주겠다는 목적은 없다. 단 이 세 가지는 지키려고 한다. 하나는 아름답게 쓰자, 둘째 쉽게 쓰자,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쓰자."

그리고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한참을 끙끙댔다. "음, 나는 정말 소설 쓸 때가 제일 재미있다. 내일이 마감날이고 원고지 50장을 써야 하는데 아직 한 장도 못 썼다고 해보자. 육체적으로는 정말 힘든데, 그때 쾌감이 제일 크다. 나는 (학대받아야 기쁨을 느끼는) 마조히스트인가 보다." 그가 다시 한번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