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犯罪 사죄는 당연한 일… 日정부, 실행에 옮겨야"

이리에 아키라(入江昭·81)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동양인 최초로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세계적 석학이다. 일본에서 고교 졸업 후 미국에 유학하고 시카고대·하버드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지난 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한 세계 역사학자 187인 성명에 서명했다. 성명은 "피해자 증언이 엇갈린다거나 숫자가 차이가 난다고 해서 일본이 수많은 여성을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붙잡아 끔찍한 야만 행위의 제물로 삼은 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이 성명은 전 세계 학자들로 확대되면서 19일 현재 456명이 동참했다. 일본 역사학계 16개 단체도 25일 위안부 왜곡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마침 근대 국가의 틀을 넘어 '트랜스내셔널 공동체'를 주창하는 그의 저서 '역사가가 보는 현대 세계'(연암서가)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필라델피아 교외에 사는 이리에 교수는 21일과 23일 두 차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범죄를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정부는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이번 공동 성명의 의미는 각국의 역사가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말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기억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나는 성명을 기초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작성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서명을 요청받았을 때 기꺼이 동의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학 교수가 성명을 주도했다. 성명에는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적 목적에서 악용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어떤 점을 말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리에 교수는 "이런 (공동성명 같은) 노력을 기울여 트랜스내셔널리즘이 성장하면 국가 수준의 대립과 내셔널리즘의 고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한국 국민 다수는 일본이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응시하며 과거의 범죄와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정부도, 일본 여론도 여기에 초점을 두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메이지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이 논란을 빚고 있다. 등재하려면 침략 전쟁에 이용된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침략전쟁은 청일전쟁과 대만 병합까지 올라간다. 우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세계 모든 사람이 국가 중심주의가 아니라 인도주의, 국익보다는 인권을 존중하게 될 때 평화로운 지역 질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책에서는 글로벌 비정부단체(NGO)의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가를 대체할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현존 국가를 대신하는 비정부단체는 없다. 그러나 NGO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세계에서 활동하는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발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럽연합 같은 지역 공동체가 아시아 지역에서도 가능할까.

"아시아 공동체도 국가(정부) 간이 아니라 민간 시민사회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산업계와 학계에서 진행될 수 있다. 적어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중국·한국·일본·미국 같은 국경은 자유로운 학술 교류를 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