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 연주하듯 전시장서 놀아봅시다"

목가구 뒤에 걸린 거대한 파스텔톤 그림이 하나의 풍경이 됐다. 물푸레나무·너도밤나무로 만든 정갈한 가구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됐고, 벽면에선 풍경 없는 풍경 그림이 자개처럼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극단(極端)의 극복(克服)-목수와 화가'. 목수 이정섭(44·내촌목공소 대표)과 서양화가 김태호(62·서울여대 교수)의 2인전이다.

목수와 화가가 만났다. 18년의 나이 차, 이질적인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은 만남이다. 절제된 감수성이 닮았다.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둘의 조합은 석 달 전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저녁에 시작한 음주(飮酒)가 다음 날 오후까지 이어졌다. "18시간 동안 진탕 먹으면서 내가 먼저 제안했다. 젊은 사람이 아주 매력 있더라. 특히 이 대표의 손이 좋았다. 노동하는 사람의 손이었다."(화가) "그 자리에선 즉답 안 했다. 너무 윗길에 계신 분의 제안이라…. 그날 만남은 내 지난 10년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목수)

김 교수는 "마치 재즈를 연주하듯 즉흥적으로 한 공간에 서로의 작품을 놓아보자. 같이 한번 놀아보자고 한 것"이라고 했다. 전시장엔 둘의 작품 50여점이 따로, 또 같이 배치됐다. 전시 제목 '극단의 극복'은 미니멀리즘(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기법)이라는 양식주의에 치우친 평가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 극단으로서의 미니멀리즘을 극복하겠다는 것.

김 교수의 회화는 '풍경(landscape)'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없다. 얼핏 보면 바탕색만 가득 칠한 밑그림처럼 보인다. 그는 "친구들은 내 그림 보면서 '넌 왜 맨날 바탕만 칠하냐. 그림은 언제부터 그릴 거냐' 물어본다(웃음)"며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가 이런 문구를 봤다.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내용이었다. 눈 덮인 것처럼, 형상은 사라지고 보이는 것 자체가 그대로 풍경인 경치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 풍경을 넣고 겹쳐서 결국 그 풍경의 형상을 사라지게 만든 것. 빛의 간섭 효과를 내는 특수안료를 사용해 자개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뀐다.

이 대표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집 짓고 가구 만드는 목수가 됐다. 어릴 적 손재주 좋은 큰아버지가 동네에서 50년 이상 가는 튼튼한 집을 짓던 모습을 늘 기억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창작과 기능으로 분업화되기 이전의 목수"라고 소개했다. 남이 그린 도안에 맞춰 가구를 짜는 게 아니라 직접 생각하며 만든다는 얘기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선(線), 비례를 중시한다.

서로의 작품을 평해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 대표의 가구는 생명을 가진 실체 같다"고 했고, 이 대표는 "선생님 풍경 그림을 보면 세상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7월 5일까지. (02)310-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