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으면서 시작된 초등학교 친구들의 모임이 있다. 몇십 년 만에 소식을 접한 친구에게서 들은 ‘누가 너를 보고파하더라’가 ‘누가 나를 찾을까’로 시작하여 사십 여년의 시간을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에게서 잊고 있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가기 시작한 것이 벌써 십 년을 넘어서 이십 년이라는 숫자를 향해 가고 있다.
그 기억은 오래된 기억의 주머니에서 고운 빛깔의 색종이 조각처럼 한 개씩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마음의 프리즘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 빛나던 색깔의 기억들이 내 아픈 자리를 서서히 치유하여 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참 열심히 그 모임을 따라다녔다.
찾아간 것이 아니고 따라다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그 오래된 기억으로 하여 비어있던 삶의 어느 부분이 조금씩 메워지고 그러한 오래된 기억으로 찾아가던 나의 모습이 또 다른 시간에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초교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입학식을 하러 가던 기억에서 시작되는 우리 유년의 기억은 흙먼지 날리던 전쟁의 폐허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그때는 몰랐던 어른이 된 어느 날부터 알게 된 우리 모두의 상처였었다. 서울이라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십 년도 되지 않은 시기여서 그랬는지 우리의 초교 시절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학교수업을 이어가야만 하였다.
학교운동장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콘세트 교실은 그해에 열여섯 반이나 되는 신입생들을 맞이하여 3부제 수업을 하였다. 전쟁 시에 이 세상에 고물거리고 태어난 아이들이라 극성맞기 이를 데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극성스럽다는 인식을 스스로 하면서 자라고 있었다. 그 극성의 표현을 우리는 음악회라는 고운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저만치 멀어 보이던 학교 교사가 몇 년 전 학교를 방문했을 때 느끼던 그 감정하고는 차이가 있어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높이 만큼으로 보여 지는 크기의 차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그 시간의 기억들은 항상 우리가 마주하는 시간 앞에 먼저 찾아와 자리를 하곤 한다.
오늘은 60년이 넘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작은 음악회라는 명칭으로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곳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서 찾아간 우리에게 이삿짐이라 하여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악기를 캐리어에 싣고 나타난 목사님 친구의 동요로부터 시작되어 모두 함께 따라 부르면서 우리는 초교 시절의 작은 꿈을 꾸어가던 꼬마들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그 시간을 마다치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여준 우리 총무님의 모습을 바라본다. 명동 한복판에서 여행 카페를 운영하면서 그 장소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여해 준 멋진 친구의 노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항상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노래를 불러 우리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구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그동안의 추억들을 영상으로 편집하여 준 친구의 수고로움이 노래와 함께 지난 시간의 모습들을 그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어머나~ 쟤는 누구니?”
“어머나~ 저때는 젊었구나!”
모두 한마디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항상 오늘은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에 가장 젊은 시간이라는 사실의 확인이다.
“너 그때 사진 찍기 싫어하더니 지금 보니까 예쁘지?”
사진을 찍기 싫어하면서 피해 다니던 내게 하는 꼬마 친구의 말이다. '그렇구나' 라는 사실 시인에서 지금부터는 카메라 앞을 피해가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오늘의 나의 모습이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큰 그리움의 기억을 선물할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수현이도 빨리 불러”라는 말에 거리낌 없이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음은 내가 노래를 멋지게 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닌 준비를 하여 준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나는 이상스럽게도 음표에 대한 감각이 느려서 그런지 이 년여의 피아노 레슨을 받은 후에도 악보에 그려진 음표가 항상 생경스럽게 느껴지고 있다.
그 생경스러움을 극복하고 불러주는 나의 노래가 친구들을 위하여 그 시간을 열심히 준비하였던 친구들에 대한 내 나름의 고마운 표시였었다. 노래방의 기기하고는 다르게 음의 높이가 맞지 않는다. 이것을 라이브라고 하는 것인가? 그러나 틀리면 조금 어떠하랴. 마음으로 불러주는 나의 노래가 나의 꼬마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악보를 눈으로 익히고 머리에 입력하여 부르기 시작한다.
“다 불러내었구나!” 라는 느낌이 만족한 마음으로 내 입가에 웃음을 머물게 한다.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음이 용기라 한다면 무언가를 마무리할 수 있음은 그 마음에 대한 최선의 노력이다. 작은 음악회라는 말을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들으면서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하였었는데 그 작은 음악회는 이제 시작점의 한 걸음을 시도하였다. 멋지게 삶을 이어온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돌아보는 나의 모습 한편에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반성이다.
우리 생의 시간 곳곳에 숨어있는 후회와 즐거움 그리고 기쁨들에서 나타나는 그 반응들이 어느 순간에 긴 관계의 꼬리로 생각이라는 것으로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쉽게 바라보고 쉽게 흘러버리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면 우리의 꼬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은 항상 친구들을 만나고 귀가하는 시간에 하게 된다.
진화론에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생체리듬에 대한 변화는 기대 수명이 백 세라 하지만 우리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의 반응 현상으로 아직은 시간적인 한계선을 넘기 어렵다. 꼬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건강수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주어진 만남의 시간을 계산해본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소중한 기억의 시간은 꽃을 피우기 위하여 내리는 봄날의 보슬비처럼 그렇게 다가온 생이 꽃 진 자리를 따라 떠나가듯이 그렇게 떠나가는 삶이라 하여도 어느 한순간 우리들에게 소중하지 않을 것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소중한 기억들로 하여 남아있는 우리들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용기와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간들을 조심스레 또 시작할 수 있음이다. 케이크 상자를 들고 나타난 교장 선생님 친구로 하여 마지막 축가를 부를 수 있는 케이크 조각처럼 그렇게 달콤하게 남겨지는 우정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