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을 잇다] 기술 갈증 채우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1981년, 딸 둘을 둔 스물아홉 살 주부가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군인이던 남편이 전역하면서 밥벌이해야 할 이유도 생겼지만, 그보다는 누군가를 예쁘게 꾸며주는 일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뒤 서른한 해가 흐른 2012년, 그는 명장(名匠) 배지를 달았다.

정매자(63)씨는 서울 삼성동에서 미용실 '정정원 헤어룩'을 운영한다. '정원'은 그의 예명이다. 그는 경기 양주에 있는 서정대에서 부교수로 이·미용 기술도 가르친다. 청담동과 삼성동에서 큰 헤어숍 두 개를 운영했는데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데다가 경기도 안 좋아서 반년 전에 하나는 문 닫고 하나는 규모를 줄였다고 한다.

"처녀 적 꿈은 가수였어요. 열여섯 살에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상도 받았어요. 그 뒤 상경해서 레코드 가게에서 몇 개월 일하다가 접었죠."

미용실은 차렸지만 손님은 오지 않았다. 자격증은 있지만 기술이 부족했다. 기술을 더 익히려고 딸 둘과 남편을 두고 도쿄로 떠났다. 낮에는 신주쿠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저녁에는 동경에 있는 미용학교로 가서 기술을 배웠다. "커트와 펌 같은 기본부터 '올림머리'라는 '업(up) 스타일'을 집중적으로 배웠어요. 또 손님 대하는 법과 각자의 취향에 맞춰주는 스타일링법도 익혔죠."

귀국해서 서울 청담동과 삼성동에 미용실을 열었다. 고객이 몰려들었다. 다들 불경기라는데 꽤 벌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목마름은 더 커져갔다고 한다. 마흔여섯이던 1998년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비달사순학교에 들어간다.

"하루는 맘대로 커트했다가 교실에서 쫓겨났어요. 사실은 '난 한국에서 잘나가는 미용사'라며 잘난 척했던 거죠. 종일 울면서 빌어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졸업 때 선생님이 쓰시던 커트 가위와 빗을 제게 주시는 겁니다. '제자들 가운데 네가 최고였다'면서요."

그는 각종 쇼(show)와 대회에서도 인정받았다.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모델들 머리를 연출했고, 세계이미용기술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2002년 영국의 헤어디자이너인 토니 리초(Rizzo)가 백혈병 환자를 돕기 위해 연 '올터너티브 헤어쇼'에도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국내 유명 미용실이 다 나오는 '헤어 이노베이션' 대회에서 1등 해야 그 쇼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제가 대형 미용실들을 누르자 다들 놀라더군요."

당시 헤어 이노베이션 대회에는 둘째 딸 김문정(37)씨도 참가했다. 문정씨는 고2 때부터 기술을 배웠고, 지금은 미용실을 함께 운영한다. 2005년 국내 웰라어워드에서 우승한 딸은 영국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4위에 입상했고, 2006년 전국기능올림픽대회 이·미용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20대 나이에 이용 부문 기능장(匠) 자격도 땄다.

모녀(母女)는 여러 해 전부터 전국 각지로 미용 봉사를 다닌다. 노인들의 머리를 다듬어주고, 소년교도소에서 미용 기술을 강의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옛 여인의 머리스타일에도 관심이 많아 가발을 만드는 고증(考證) 작업 등에도 참여한다. "딸이 저와 한길을 걸으니 큰 힘이 돼요.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도 든든하고요. 제 오랜 꿈인 미용박물관을 나중에 함께 만들어줄 '친구'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