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08 10:14

눈 뜨면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잠시 초록의 싱그러움을 잊게 하였다. 푸른 계절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계절과는 관계없이 피곤이 머물러 있던 날들을 지우고자 찾아간 녹색의 정원은 눈을 돌리고 있었던 사이에 깊은 초록의 빛을 지니기 시작하면서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좁히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 잎이 넓어져 깊은 산길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앵봉 길은 도심의 주변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신선한 공기로 우리를 맞이한다. 잠시 깊은 호흡으로 숲의 공기를 마신다. 몸 풀기 체조가 끝난 후 날리는 모두의 웃음들이 숲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이 웃는 웃음의 크기만큼 숲도 즐거움의 바람을 함께 날리기 시작한다.

하늘이 푸르르 날에 하늘을 닮은 내 마음을 찾으려고 만나러 갔던 마음의 여행길이다. 봄날의 끝자락에 그 흔적을 여름에게 남기고 떠나간 아까시 꽃잎! 여름이 다가오는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마음이 머물러 있었던 무게감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무겁다는 핑계로 배낭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서둘러 꺼내고 있었다.

[시니어 에세이] 부처님 오신 날에

봄이 다가오던 어느 날에 찾아갔던 산수유마을의 노란 꽃들을 바라보면서 봄맞이 꽃 나들이는 그것이 끝이라 생각하였던 날이 있었다. 마음에서 지워버린 봄날의 꽃들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많은 꽃잎을 화려하게 피워내면서 무심히 내 곁을 스쳐가고 있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어느 작가의 작품 사진에서, 무심코 스치면 그저 야생화에 지나지 않을 작은 꽃잎들이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새로 탄생할 수 있는가에 경이로움을 느끼던 몇 날에 봄이 지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피사체로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로 작은 꽃잎들이 아름다운 생명체가 되어 새로운 탄생을 시도하고 있었다. 발밑에 떨어져 회색의 빛으로 변하고 있는 아까시 꽃잎도 어느 순간에는 사진 속의 작은 꽃잎들처럼 제 모습을 빛내던 어느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뻐꾹! 뻐꾹! 아까시 꽃잎이 흔적을 남긴 고요한 숲길에서 뻐꾹새가 제 노래로 나뭇잎들을 흔들기 시작한다. 진달래 꽃잎이 필 때만 뻐꾹새는 운다고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진달래꽃과 뻐꾹새의 이야기는 분홍이 지닌 색의 존재감을 진하게 남기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종종 내게 그 이야기로 말을 걸기도 한다.

순간에 피어나서 사라지는 꽃잎들도, 그 꽃잎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고자 노래하는 뻐꾹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깊어가는 5월의 숲길에서 우리와 함께 동일한 생명을 지닌 하나로 일체감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어제의 숲길을 생각하면서 새벽에 찾아간 영화사에서 만나는 연등의 모습도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를 통찰함으로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궁극의 행복을 찾아가라는 월주 큰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숲이 깊어가면서 길의 모습도 함께 깊어가고 있다.

만물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상호 간의 관계에서 찾아가는 자아의 존재감인 제법무아처럼 함께 걸어가는 숲길에서 옛 성인들이 알려주는 지혜의 전달이었다. 숲이 여름으로 걸어가면서 깊어지는 것처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웃음도 숲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처럼 그렇게...나도 자연을 닮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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