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08 10:14

구산선문의 여덟 번째 이야기는 봉림산문이다. 봉림산파의 중심사찰 봉림사(鳳林寺) 터는 지금껏 알아본 구산선문 중 성주산문, 사굴산문과 마찬가지로 현재 절집은 남아있지 않고 폐사지만 남겨져 있는데 성주산, 사굴산은 발굴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남아있는 석조유물들이 가지런히 정리되고 복원, 수습되어 답사객들을 맞고 있는 형편이지만 봉림사지는 야트막한 산속 한가운데 찾는 이 없이 그야말로 잡초만 무성한 폐사지이다.


봉림산문(鳳林山門) 봉림산(鳳林山) 봉림사(鳳林寺)

봉림사 폐사지는 경남 창원시 봉림동 176번지로 창원시 시내 중심부 가까이에 있었다. 다행히 내비게이션에 잡힌다. 창원시는 1970년대부터 공업단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신시가지로 그 옆에 있는 마산이나 창원보다는 역사와 전통이 한참 못 미치지만, 그전부터 이곳 주민들은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이라고 하여 하나의 생활권처럼 지내오다가 지난 2010년 마침내 창원시로 통합되어 경남도청의 소재지이자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되어 현재 광역시로의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문화유적과는 조금 거리가 먼 듯한 대규모 기계공업단지 창원의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 봉림동, 창원 골프장 바로 옆, 아파트 단지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1Km 이상 꼬불꼬불 올라가야 한다. 아파트가 끝나고 길은 막히고 좁다란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봉림사지 표지판이 없었다면 찾기 어려운 곳이다.

▲아파트 단지 옆 봉림사지 안내 간판. 이곳부터는 좁은 산길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아파트 단지 옆 봉림사지 안내 간판. 이곳부터는 좁은 산길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절터가 위치한 봉림산은 높지는 않으나(290m) 숲이 울창한 저 산속 어딘가에 절터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좁은 산길은 비록 시멘트 포장이기는 하였으나 교행(交行)이 어렵고 위험해 보였으며 중간 중간에 몇 채의 민가가 있어 사유지인 듯 보였다. 막바지 민가에 이르기 전에 소로로 내려서야 한다. 차량 주차하기가 매우 곤란한 지점이다.

▲아파트촌에서 한참 올라온 중턱. 시멘트 포장 단차로에서 벗어나 이제는 소로를 따라 잠시 걸어야 한다. 중간 표지판은 임시 제작한 듯 매우 부실해 보인다. 비바람에 날아가면 답사객이 엄청나게 고생할 판이다.
▲아파트촌에서 한참 올라온 중턱. 시멘트 포장 단차로에서 벗어나 이제는 소로를 따라 잠시 걸어야 한다. 중간 표지판은 임시 제작한 듯 매우 부실해 보인다. 비바람에 날아가면 답사객이 엄청나게 고생할 판이다.
▲10분가량 소로를 따라 걸으면 대나무 숲을 지나고, 이내 넓은 공터처럼 열린 공간이 나타난다. 봉림사 폐사지이다.
▲10분가량 소로를 따라 걸으면 대나무 숲을 지나고, 이내 넓은 공터처럼 열린 공간이 나타난다. 봉림사 폐사지이다.
▲절터로 짐작되는 공간,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붓하고 안온한 느낌이며 기왓조각이나 석물 등은 보이지 않는다.
▲절터로 짐작되는 공간,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붓하고 안온한 느낌이며 기왓조각이나 석물 등은 보이지 않는다.

절터의 규모로 보아 그다지 대찰(大刹)은 아니었는 듯하며,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없어서인지 금당 터나 크고 작은 당우들의 초석, 석탑이나 석등, 각종 석물 등이 보이지 않으며 그 흔한 기왓조각도 찾기 어려웠다. 물론 풀이 우거져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경대사 승탑과 탑비의 표지석, 그리고 이들을 옮겼음을 기록한 비석이 남겨져 있다.
▲진경대사 승탑과 탑비의 표지석, 그리고 이들을 옮겼음을 기록한 비석이 남겨져 있다.
▲삼층석탑과 승탑, 탑비의 사진을 플래카드에 인쇄하여 걸어 놓았다. 조금 성의 없어 보인다. 아파트 근처부터 좀 더 상세한 안내표시와 진입방향, 남은 거리 등 도움이 되는 표지들을 설치해 줄 것과 이곳 폐사지도 비록 발굴, 정리는 못 하였더라도 영구적이고 상세한 현황판 등을 관계기관에서 세워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삼층석탑과 승탑, 탑비의 사진을 플래카드에 인쇄하여 걸어 놓았다. 조금 성의 없어 보인다. 아파트 근처부터 좀 더 상세한 안내표시와 진입방향, 남은 거리 등 도움이 되는 표지들을 설치해 줄 것과 이곳 폐사지도 비록 발굴, 정리는 못 하였더라도 영구적이고 상세한 현황판 등을 관계기관에서 세워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내 상북초등학교로 옮겨 세워진 삼 층 석탑, 일본 반출하려고 부산까지 팔려간 것을 찾아왔다고 한다. (경남유형문화재 제26호) 여러 차례 옮겨 다녀서인지 2층 기단은 일부만 남았으며, 삼층 탑신 위의 상륜부 노반과 복발은 최근에 만들어 올린 듯하다.
▲시내 상북초등학교로 옮겨 세워진 삼 층 석탑, 일본 반출하려고 부산까지 팔려간 것을 찾아왔다고 한다. (경남유형문화재 제26호) 여러 차례 옮겨 다녀서인지 2층 기단은 일부만 남았으며, 삼층 탑신 위의 상륜부 노반과 복발은 최근에 만들어 올린 듯하다.

다행히도 봉림사 삼층석탑은 창원 시내 상북초등학교에 옮겨져 있으며, 개산조(開山祖) 진경대사의 승탑과 탑비는 원래 이곳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이곳에 승탑과 탑비가 있었다는 표지석만이 남아있어 이곳이 봉림산문 봉림사 절터였음을 말해준다.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

봉림산문을 개창한 진경대사 심희(855~923)는 신라 말기의 승려로 속성은 김(金) 씨, 김유신의 후손으로 9살이 되던 해에 여주 고달사 원감대사 현욱을 찾아가 19살에 계를 받은 후 전국을 다니다가 김해지방 세력가 김율희를 만나 그가 시주한 절에 자리를 잡고 봉림사(鳳林寺)라 하고 선문을 여니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 들었다.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고 국왕들을 귀의시킨 그가 923년 봉림사 선당(禪堂)에서 입적하자 왕이 ‘진경(眞鏡)’이란 시호(諡號)와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는 탑 명(塔名)을 내렸다.

이렇게 하여 세속 나이 칠십, 승려 나이 오십에 석가모니처럼 오른쪽으로 누워 열반에 드니 대사가 주석하던 봉림사 지에 승탑과 탑비가 있어야 하나 앞에서 얘기한대로 지금의 봉림사  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황량한 숲 속에 수풀과 대나무만 무성하다. 삼층탑은 일본으로 반출하려던 일본인들이 그나마 승탑과 탑비는 서울로 옮겼다고 표지석을 세워놓아 그 자리를 찾아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세워진 진경대사 승탑.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鳳林寺 眞鏡大師 寶月凌空塔)'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중대석은 꽃띠를 두른 북(鼓) 모양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붕돌이 전체적으로 커 보인다. 하대석 윗면에 돌출 귀꽃조각이 있었던 듯한데 지붕돌 귀꽃과 함께 대부분 깨어져 아깝다. (보물 제362호)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세워진 진경대사 승탑.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鳳林寺 眞鏡大師 寶月凌空塔)'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중대석은 꽃띠를 두른 북(鼓) 모양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붕돌이 전체적으로 커 보인다. 하대석 윗면에 돌출 귀꽃조각이 있었던 듯한데 지붕돌 귀꽃과 함께 대부분 깨어져 아깝다. (보물 제362호)
▲승탑과 짝을 이루는 탑비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어서 볼 수 없다. 다만 예전 경복궁에 세워져 있던 사진을 보면 비신이 세 조각으로 부러진 듯하고 일반적으로 귀부와 이수를 갖춘 모습이다. 승탑을 전시했으면 탑비도 함께 세워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아니면 탑비는 전시하지 못하고 수장고에 있다는 설명과 사진이라도 비치했으면 한다. (보물 제363호)
▲승탑과 짝을 이루는 탑비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어서 볼 수 없다. 다만 예전 경복궁에 세워져 있던 사진을 보면 비신이 세 조각으로 부러진 듯하고 일반적으로 귀부와 이수를 갖춘 모습이다. 승탑을 전시했으면 탑비도 함께 세워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아니면 탑비는 전시하지 못하고 수장고에 있다는 설명과 사진이라도 비치했으면 한다. (보물 제363호)

이상으로 구산선문 중 8곳을 답사하였다. 마지막 남은 곳은 수미산문 광조사인데 북한 땅 개성에 있어 답사가 어렵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개성만이라도 답사할 수 있으면 수미산문뿐 아니라 고려의 수도 개성 주변에 어마무시한 문화재들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을 텐데 난망한 일이다. 부득이 구산선문 중 여덟 곳의 답사기로 마무리한다. 아쉽다. 다음에는 5대 적멸보궁 답사기를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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