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을 잇다] 인내의 시간 길수록 色은 밝게 빛나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화학 염료가 발명되면서 천연 염색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푸른 쪽과 붉고 노란 홍화만으로 모든 색을 구현했던 우리 전통 염색도 사라져 갔다. 명주실을 염색해 도포 끈을 만들어 팔던 할아버지를 보며 자란 최옥자(69)는 한국의 염색을 복원해보기로 했다. 부산에서 다도(茶道)를 가르치던 1982년의 일이다.

우연히 홍화로 염색한 기모노의 붉은 안감을 본 것이 계기였다. 그 우아함에 반해 옛 방식 그대로의 재현을 다짐했다. 1987년 그는 안동민속촌에 전통천연발효염색연구소를 냈다. 스승은커녕 변변한 문헌도 없는 상태에서 원료인 쪽부터 심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제대로 발효시키지 못해 자식처럼 기른 쪽을 버리고 또 버렸다. 그러다가 중국·일본을 돌며 천연 염색 기술을 쌓아 갔다. 총 8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쪽 염색이 가능해졌다.

도전 20년째인 2001년, 최옥자는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외국에서만 20차례 전시회를 열어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2009년에는 닥 원료를 전통 방식으로 염색한 고려시대 감지(紺紙) 재현에도 성공했다. 2011년 그는 섬유가공 분야의 첫 대한민국 명장(名匠)이 됐다.

그는 올 들어 쪽과 홍화로 염색한 스카프를 인천공항 한국전통문화센터에서 팔고 있다. 경복궁과 고궁박물관에서도 판다. 매장을 더 늘릴 계획은 없다. "아직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에만 내놓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지 눈길도 주지 않거든요."

전통을 되살리는 것보다 힘든 것은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한 기술을 전승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110명 넘는 '제자'를 만났다. 그러나 남은 사람은 18년 제자 임정숙(64)씨뿐이다. 칠순 앞둔 스승에 육십 중반의 제자다. 1995년부터 10년간 최씨는 해마다 제자를 받았다. 봄에 쪽 씨앗 뿌리고 여름에 잎을 딴 다음 발효시켜 겨울에 염색을 가르쳤다. 그런데 이듬해까지 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쪽잎 채취하고, 몇 달 염료를 숙성시키고, 그런 고단한 과정을 견뎌내질 못해요. 처음부터 '전통 염색이 멋져 보인다'며 고상한 취미로 여겨 온 분도 많거든요. 두 손 들고 나갈 수밖에요."

제자 찾기가 어려워 보이자 책을 쓰기 시작했다. 기록으로나마 후대에 알리기 위해서다. '쪽빛의 진실' '초록빛의 신비' '해오름의 빛' 등 6권이 그렇게 나왔다. 2010년에 낸 컬러 255쪽 정리판 '전통으로 탄생되는 천연색'은 세계인이 배우도록 영어·중국어·일본어 설명도 넣었다. 그는 "혹시 직접 전승에 실패한다 해도 이런 기술, 이런 사람이 있었음은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이 조금은 통한 것일까, 2011년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이 책을 인용한 천연 염색법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