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마종기 시인의 시가 공연장에 애통한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아내는 맛있게 끊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치떼를 생각하자.

연극 <아버지>의 아버지 장재민은 시를 읊조린 후 한동안 말이 없다. 국물맛을 내고 버려지는 멸치 같은 자신의 인생이 너무 처량하다고 생각해서 일까? 버려지기 전 마지막 국물맛을 내기 위해 장재민은 스스로 교통사고를 당하고 보험금를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다.

직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아버지 장재민, 번번한 직장도 없이 철들지 못한 아들 장동욱, 백화점 계약직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딸 장동숙 그리고 언제나 남편 장재민을 변함없이 믿고 따르는 어머니 임선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대변한다.

장재민은 평생토록 막연히 '성공'을 동경하고 꿈꾸며, 자식들에게 그 꿈을 대물림 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성공한 사람이고 얼만큼을 벌어야 부자인 것 일까? 아버지 세대의 행복기준이 '성공한 부자' 였다면 그들의 아들, 딸들의 행복기준도 과연 그럴까? 자식들은 아버지를 '고집불통에 고지식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물며 장재민의 친구도 회사 상사도 그를 그렇게 여긴다. 하지만 아버지 장재민의 아집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희생적 사랑을 보여준다. 변해가는 세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이해할 수 없다 한들, 어느 누가 '가장' 장재민을 어찌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연극 <아버지>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들 것 이다.

가정의 달 5월은 지났지만 연극 <아버지> 공연과 함께 가족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


▷6월 27일까지 동양예술극장 2관, 공연 시간 100분,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