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유괴범 쫓는 형사와 도사… 불협화음이 빚어낸 하모니

부산에서 수산회사 사장(송영창) 딸 은주가 납치된다. 열흘이 지나도 유괴범은 감감무소식이다. 고모(장영남)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러 간 점집 김 도사(유해진)로부터 "은주가 아직 살아 있다. 공 형사(김윤석) 사주라야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공 형사는 쓸데없는 소리라며 핀잔을 주는데 김 도사 예언대로 보름째 되는 날 유괴범이 전화를 걸어온다.

18일 개봉하는 '극비수사'(감독 곽경택)는 여느 범죄 드라마와는 궤도부터 다르다. 투캅스가 아니라 '형사＋도사'라는 조합으로 1978년 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실화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안경테에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하나씩 끼운 셈이다. 처음엔 어지럽고 불협화음을 견뎌야 한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면서 투닥거리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든다. 그리고 다른 영화에선 볼 수 없는 무늬가 나타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유괴된 지 33일째 공 형사와 김 도사가 충돌하는 대목은 올해의 수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명장면이다. "오늘 넘기면 애 못 살려요. 물가에서 찾아야 해요"라는 김 도사의 말에 공 형사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 안 할래"라며 그가 구두 밑창에 몰래 깐 부적을 꺼내 박박 찢는다. 김 도사는 흙바닥에 '所信(소신)'이라고 쓴다.

그것은 이 영화가 길어 올린 아름다운 무늬의 이름이다. 뇌물 받은 게 들통난 공 형사나 식구들이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인 김 도사나 궁지에 몰려 있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서울과 부산의 다른 형사들이 범인을 추적할 때 그들은 은주를 살리는 일에 전부를 건다. 남은 건 소신밖에 없다. 쥐뿔도 없는 이들이 지닌 소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 없는 세상이 어떻게 헝클어지는지 돌아보게 된다.

'극비수사'에서 추적 장면을 몽땅 들어내면 세 가족의 생활이 보인다. 공 형사는 때묻은 경찰이고, 은주는 아들의 같은 반 친구다. 아내는 "데모하는 사람 쫓아다닐 시간은 있고 애 찾아줄 시간은 없다, 이거 아닝교"라며 바가지를 긁는다. 성철 스님 모시다가 불자가 아닌 도사의 길을 택했다는 김 도사는 벌이가 형편없다. 아내는 딸 병원비 때문에 결혼반지까지 팔았다. 하지만 이웃에게 닥친 불행을 살피고 진심을 다해 돕는다.

망치로 호두를 깨보면 안다. 껍데기가 단단할수록 속은 허하다. 손가락을 찧을 땐 화끈거리며 부어 오르는 게 삶의 징표라는 생각도 든다. 후반부에서 공 형사와 김 도사는 호두 두 알을 모아 비빌 때 나오는 듣기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밀도 높은 연기와 연출력이 108분 내내 부드러운 몰입감을 선물한다. 유해진의 그늘진 얼굴은 처음 본다. 포니 자동차, 쫄쫄이 과자, 네모난 공중전화 등 사실적으로 재현한 70년대 풍경도 그윽하다.

신문과 방송에 난 경찰들이 은주 납치 사건을 해결한 게 아니었다. 이 영화는 뉴스 아래 감춰져 있던 두 사람,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공(功)을 가슴 깊이 숨겨놓은 두 사람의 이야기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세상이라서 그들이 더 반짝인다. 점(占)과 사주가 등장하지만 미신(迷信)이 아닌 미신(美信)으로 다가온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