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꽉 채운 白磁 한 점

백자(白磁) 한 점이 공간을 압도한다. 2층 맨 끝 전시실, 66㎡(20평)의 넓은 방 한복판에 대형 항아리 한 점이 홀로 놓여 있다. 풍만한 어깨에서 급격히 좁아지며 뻗어 내린 몸체의 곡선이 유연하면서도 긴장감 있다. 국보 제107호 '백자철화(白磁鐵畵) 포도문 항아리'. 18세기 영조 때 빚은 53.5㎝ 높이의 대작이다.

박물관은 이 작품을 위해 전시실 하나를 온전히 바쳤다. 반원으로 둘러앉을 수 있는 감상용 의자를 설치했고 서서히 조도가 바뀌는 '감성 조명'을 시도했다. 사방이 어둑해졌다가 천천히 밝아질 때마다 백자의 다양한 얼굴이 드러난다. 항아리 전체를 화폭 삼아 그린 널찍한 이파리들과 그 사이로 뻗어 내린 포도 넝쿨의 붓놀림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동그란 포도 송이와 넓은 잎에는 짙고 옅은 농담(濃淡)이 나타나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관장 장남원)이 개관 80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조선 백자' 특별전이다. 눈 밝은 관람객 사이에서 '알찬 전시'라고 입소문이 났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시대 백자 600여점을 박물관 1~2층 전관에 촘촘히 채웠다. 단일 백자 전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도자기 컬렉션으로 유명한 이대 박물관이 주요 소장품을 내놨고 가회민화박물관, 고려대 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도 빌려왔다.

백자에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장수와 행복을 상징하는 다양한 길상문(吉祥紋)이 등장하는 조선 후기의 백자들, 경기도·경상도·황해도 등 지방 특색이 담긴 백자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동선의 마지막 끝방에서 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인 '백자철화 포도문 항아리'를 만날 수 있다. 내년 1월 말까지. 8월 한 달은 휴관. (02)3277-3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