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白夜를 덮친 사랑, 그건 괴물이었어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 축제가 열리는 1890년의 아일랜드. 우아한 귀족의 딸 줄리(제시카 차스테인)가 같이 춤을 추자느니 구두에 입을 맞추라느니 명령하자 하인 존(콜린 패럴)은 마음이 흔들린다. 어릴 적부터 품은 연정을 고백하고 하룻밤을 보내지만 이튿날 이 사랑은 사나운 괴물로 돌변한다. 그가 줄리를 신분 상승 도구로 이용하려 했다는 게 들통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18일 개봉하는 '미스 줄리(Miss Julie)'는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지고 귀족과 하인의 욕망이 뒤섞이는 1박 2일을 포착한다. 존의 약혼녀인 하녀 캐서린(서맨사 모턴)까지 등장인물이 세 명뿐인 이 영화를 마라톤에 빗대면 초반 20분이 난코스다. 하나의 공간에서 장식 없이 펼치는 연극적 화법이 버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순도 높은 심리극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동경했던 존재의 실체는 보잘것없고, 잠깐 휩싸였던 감정은 진짜가 아닌 헛것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사랑한다고 해줘. 아니면 난 무의미해"라고 울부짖는 줄리나 "아가씨는 밑바닥에서 보는 세상이 어떤지 몰라요"라고 말하는 존 사이에는 믿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결국 '창녀'와 '종놈'으로 추락할 뿐이다.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건 지금도 매한가지 아닐까.

'북유럽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스웨덴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희곡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제시카 차스테인과 콜린 패럴은 단단한 연기 호흡을 보여주며 감정 진폭을 견뎌냈다. 둘 사이에서 고요한 비명을 지르는 서맨사 모턴도 인상적이다. 리브 울만 감독이 연출했다. 130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