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버진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신문에 이름이 난 적도 없지만 훌륭한 가장이다. 평생토록 방방곡곡 다니면서 회사물건을 팔아줬는데 인제 와서는 나이 먹었다고 폐물 취급을 한단다. 너희 아버지는 자살하시고 말 거다.”
어둠 속에 하얀 꽃다발을 앞에 두고 검은 상복을 입은 아내 선희가 오열한다. 가족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이 죽음으로 보상금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 장재민이 선택한 죽음이다. 이미 아내는 그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아가는 건 상대방이 전달하고 있는 언어로만이 아니다. 상대의 행동, 몸짓, 표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느껴가는 감정의 전달이다.
창작연극 아버지는 현대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가 김명곤에 의하여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을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새롭게 각색되어 탄생되었다. 원작에서도 해고당한 아버지가 자동차 사고를 위장해 실직자인 아들에게 보험금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죽어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동서양 어디에서나 가족을 향하는 아버지의 슬픈 부성애가 창작의 주제가 되어준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고전이 오늘의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서민들의 삶으로 조명되어 나타나는 연극에서 우리가 알아가야 하는 삶의 의미와 시대적인 연민과 비극이 있다. 고전은 그저 고전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옛날이야기가 아니고 어느 시간대에서나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정서를 담아 시간으로 검증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가치는 오래도록 우리 생활 속에서 그 모습을 변형시키면서 나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아버지 장재민(김명곤), 축구 유망주였으나 서른이 넘어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벽까지 있는 아들 동욱(판유걸), 백화점 정식 직원의 꿈을 지니고 있는 계약직 점원인 딸 동숙(조연진), 이러한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여전히 남편을 믿고 따르는 아내 선희(차유경)가 이어가는 현대가정의 위기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하여 그려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니고 있는 부패와 탐욕에서 건전한 자기 정체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알아가야 하는 유연함이다. 가족을 언제까지 지켜줄 것 같았던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에 숨어있는 세상을 향한 공포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미련을 말레이시아에서 진주조개 채취로 큰돈을 벌어 성공한 형(문영수)의 모습을 통하여 버리지 못하는 꿈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이다.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라’ 형이 재민의 가족들에게 하는 말이다. 푸른 바다는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푸른 바다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 푸른 바다는 우리 사회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꿈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꿈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주인공 재민은 자신에 대한 꿈을 아들 동욱을 통하여 과대확장을 하고 있었다.
그 환상이 아들 동욱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이웃집 친구의 아들 종식의 노력하는 모습을 부정하고 있었던 아버지가 마주하는 현실에서 느껴가는 괴리감과 아들 동욱이 알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깨달아가는 부정적인 실체가 동욱의 꿈에 좌절을 안겨준다.
꿈과 이상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차이점과 바쁘게 변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의 꿈에 안주하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자아를 바라보면서 연극 속 내용에 동화되어 가기보다 나는 "왜?"라는 이유를 그곳에서 찾고 있었다. 현대의 물질문명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생존이 가능해지는 기계적이고 황폐한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아버지 재민은 아날로그적인 판매 전략으로 실추하고 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변화되는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모두 다 스마트폰을 들고는 다니지만 실제로 스마트 폰이 지니고 있는 기능의 20%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현대의 기계화 사회에서 외로운 섬처럼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무대로 향하는 몰입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대적인 상황에서 외로워지고 있는 우리가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왜 아버지 재민은 현실적인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너무도 인간적인 아버지 재민을 죽음에서 구출할 방법은 없었을까? 삶에서 필요한 이상과 현실의 다스림과 조율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그것은 거울을 보듯이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내 선희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아들 동욱의 모습이 아들들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깨달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아들을 통하여 인식시키고자 하는 연극의 내용이 가슴 아픈 우리들의 모습이었으나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추억이 되어버린다. 아버지 재민의 모습을 통하여 인간적인 정서를 잃어가는 우리의 삶에서 가깝게 숨 쉬고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방식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6월 27일까지 동양예술극장 2관, 공연 시간 100분,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