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직업, 하고픈 얘기] "재미요? 매일 일 끝나면 안도의 한숨 쉽니다"

16일 낮 서울시의회와 덕수궁 사이의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 현장. 공사장 가림막 뒤로 두부처럼 잘린 6층 건물이 보인다. 콘크리트 기둥과 바닥, 벽돌벽 사이로 철근들이 뒤엉킨 채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가 덕수궁 내부를 볼 수 없게 하려고 지었던 국세청 별관을 서울시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87년 만에 없애는 중이다. 초기에는 조선총독부 체신부 청사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철거가 끝나면 이 자리에는 시민광장이 조성된다.

"오늘은 6층 중앙부터 먹읍시다(철거합시다)!" 철거를 맡은 성도건설산업 민영석(61) 상무가 무전기를 잡고 지시하자, 현장 직원 10여명이 바로 움직였다. 64t 압쇄기(壓碎機)가 육중한 바퀴를 굴리며 꿈틀하더니, 길다란 철제 팔에 매달린 1.5m 크기의 쇠집게가 콘크리트를 먹고 또 뱉었다. 콘크리트 더미들이 나뭇가지처럼 뜯겨 나갔다. 직원들은 그를 '대장'이라 불렀다. 철거 경력 10년이라는 송명봉(36)씨는 "말단부터 시작해 현장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일한 우리 대장이 철거에 관해선 국내 최고 전문가"라고 했다.

"내 자식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놈이에요." 압쇄기를 가리키며 민씨가 말했다. 2008년 그가 국내 최초로 들여온 고층 철거 장비다. 이 녀석과 함께 2008년 서울 나산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2013년 안성 코리아냉장 창고 화재 현장 등을 누비며 뒷마무리를 해왔다.

"우리는 밤낮없이 일만 한 세대였죠." 1970년대 말,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중동에 다녀오면 집 한 채 산다"는 말을 듣고 요르단으로 가 집을 지었다. 1990년대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와 코트디부아르 벌목장에서 장비 정비사로 일했다. 지금 직장인 성도건설산업은 35년 역사의 철거 전문 회사다. 1993년 입사해 23년째 근무하는 민씨가 최장수 직원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현장,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등 초대형 사고의 뒤처리 현장에도 늘 그가 있었다.

민씨는 요즘도 전국 12개 철거 현장을 오가며 작업을 총괄한다. "처음엔 친구 소개로 일해봤어요. 짓는 일보다 부수는 일이 더 재밌더라고요."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재미는 쏙 사라지고, 하루 작업이 끝나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했다. "작은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설계를 하죠. 철거는 달라요. 몇 달 혹은 몇 년간 차곡차곡 지은 건물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리잖아요. 언제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재미는커녕 긴장의 연속입니다."

철거 대상 건물도 저마다 특징이 있다. 작업의 불확실성 때문에 경험과 판단이 중요하다. 성도건설산업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내 철거 업체로는 처음으로 작업에 '설계'를 도입했다. 국세청 별관 역시 사전 계획대로 저층부터 고층부, 내부부터 외부 순으로 사라지고 있다.

철거 현장을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예전엔 신기하다면서 손뼉까지 쳐주었어요. 지금은 아니죠. 먼지와 소음 때문에 민원이 끊이질 않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없애긴 힘들어요. 어쨌거나 늘 죄송하지요."

그는 휴대폰 시작 화면에 철거되는 건물을 배경으로 '파괴가 있어야 창조가 있다'는 문구를 올려놓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 상암동 일대를 철거했어요. 그 자리가 10년 만에 디지털미디어시티로 탈바꿈했잖아요. 뿌듯합니다. 철거는 새로운 완성을 위한 첫 삽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