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걸작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의 화가 이쾌대는 월북 작가라는 이력 때문에 1998년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이름을 거론할 수 없었고, 작품의 대다수가 유족 소장으로 전해져 그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기회가 적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展은 화가 이쾌대의 예술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백남준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쾌대(李快大, 1913~1965)는 서울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학창시절 인물화에 관심을 보였으며 일본의 유명 전람회인 ‘니카텐’(二科展)에서 <운명>(1938), <석양 소풍>(1939), <그네>(1940)로 연이어 입선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귀국 후에는 이중섭, 최재덕 등 일본 유학 출신 화가들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적인 감성의 세련된 서양화를 선보였다.
해방 후에는 해방의 감격과 역사적 문제를 주제로 <군상-해방고지>, <조난>, <창공> 등의 대작을 발표하며 화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족 때문에 피난을 가지 못했고,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강요로 김일성,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리는 강제 부역을 하다 국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53년 남북한 포로 교환 때 북한을 택해 그가 월북 화가라는 이유로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다 1988년 해금된 이후 그의 그림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완벽에 가깝게 인체를 그려내는 그의 뛰어난 능력과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한 인물들의 분위기와 표정, 역사와 시대가 녹아 있는 작품의 주제는 감상자들을 작품 속으로 빨아들인다. 그가 그린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이쾌대가 회화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한 1933년부터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까지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30대의 화가가 남긴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탐구정신과 예술세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쾌대 예술의 특징은 ‘사랑, 전통, 시대’로 볼 수 있다. 이쾌대의 작품에 등장하는 단아하고 세련된 분위기와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그의 부인은 이쾌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였다. 처음에는 부인을 그대로 묘사했지만 점차 조선의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극복해나가는 강인한 민족의 이미지로 발전시켰다. 또한 한국의 역사와 민족의 운명, 역사와 시대를 고민했다. 이쾌대에게 ‘리얼리즘 회화의 거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준 <군상> 연작은 해방 직후 남북 간의 대립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이라는 혼란 속에서 제작되었다. <군상>에서 해방의 기쁨을 알리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이쾌대가 꿈꾸었던 예술가의 모습일 것이다.
이쾌대의 10대 초기 습작부터 30대 후반인 한국전쟁기에 남긴 작품까지 대표작을 망라하여 이쾌대 예술의 전개와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경성 휘문고보 재학시절부터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 유학시절까지의 수업기,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신미술가협회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적인 서양화 양식을 모색해가는 모색기, 마지막으로 좌우의 이념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해방공간에서 시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예술의 방향을 수립하고 대작을 발표하는 전성기 등 이쾌대 예술을 세 시기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최초로 공개되는 드로잉, 잡지 표지화, 편지, 그리고 각종 유품은 이쾌대의 예술세계를 한 단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도와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전시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제 1, 2 전시실
전시 기간 : 2015년 7월 22일~11월 1일
전시 분야 : 회화, 드로잉, 관련 아카이브 등 약 300점
문의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02-2022-0600, www.mmca.go.kr)
Resource·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