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24 09:52

시작은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흐름이 됐다. 자동차 안에서 욕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점을 충족시키는 전천후 장르. 지금은 SUV 시대다.

SUV는 스포츠 유틸리티 비히클(Sports Utility Vehicle)의 약자다. 험로 주행능력을 보강해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적절하도록 만든 차였다. 하지만 도시 수요가 폭발했다. 시야가 높아서 운전이 편하고 공간이 넉넉한 점에 결정적으로 매료되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도 않았고 연령도 개의치 않았다. SUV는 거의 모든 소비자를 끌어들이면서 자동차 업계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후 전 세계 자동차 회사는 다양한 형태의 SUV 장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SUV에 쿠페의 디자인과 운동 성능을 버무리기도 하고 더 본격적으로 도심형 SUV를 지향하는 모델도 내놨다. 넉넉한 공간에 역동성을 극대화해서 달리기 욕구를 충분히 해소해주는 모델도 있다. 지금, SUV는 가장 풍성한 하위 장르를 거느리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같은 장르라고 한데 묶기보다, 그 다양한 성격을 만끽하는 재미 자체를 위한 8대의 SUV.


렉서스 NX200t

렉서스 NX200t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을 때 보닛 끝 언저리에서 ‘쉬익- 쉭’ 하는 소리를 들었다. 거인의 숨고르기, 독이 잔뜩 오른 표범, 방울뱀이 위협할 때 내는 소리처럼. 그 소리와 가속 사이에는 틈이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렉서스가 만든 SUV 아니었나? 렉서스가 이렇게까지 공격적이었나? 하지만 나긋하게 돌아가는 볼륨 버튼의 감각, 가죽의 질감과 스티치의 정직함은 과연 렉서스의 것. 렉서스는 미처 기대 못했던 부분까지 독보적으로 섬세하다. 창문을 내리고 올리는 과정과 방식도 렉서스답다. 빠르게 오르내리다가 마지막 즈음에 속도를 줄인다. 이런 움직임에서도 성품을 짐작할 수 있고, 예민함으로 렉서스를 따라잡을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1998cc 싱글터보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238마력, 최대토크 35.7kg.m을 낸다. 안정적인 네 바퀴, 듬직한 핸들의 감각, 겸양과 고요, 만만치 않은 실력과 그걸 드러내는 방식…. 여기에 아찔한 고성능까지 더했다. 렉서스는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아예 확장해버렸다. 이 공격적인 디자인은 실제로 봤을 때 진짜 설득력이 있다. 5천4백80만~6천1백80만원.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고전적인 직선, 담대한 크기, 역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디자인.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는 SUV로 지향할 수 있는 어떤 극단에 있다. ‘철컥’, 이 차의 단단한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특유의 금속성 소리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은 두근거릴 것이다. 그리고 갖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G350 블루텍은 2987cc V6 싱글터보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211마력을 낸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성능은 9.1초, 최고속도는 175킬로미터다. 지구 어디라도 흔들리지 않는 성격, 도시에서도 편안하게 탈 수 있지만 언제 어떤 오프로드를 만나도 피할 일은 없을 것 같은 완고함…. 가격은 1억 4천4백80만원이다. 한 번 더 도약해볼까? 5461cc V8 트윈터보 엔진으로 자그마치 544마력, 77.5kg.m을 내는 고성능 버전, G63AMG도 있다. 이렇게 당당한 체격으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5.4초, 웬만한 스포츠카 수준이다. SUV가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공격성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메르세데스-벤츠가 증명하는 방식,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전 지구 어떤 지형에서도, 심지어는 트랙에서도 순순히 물러설 일 없는 G63AMG의 가격은 2억 3백만원.


BMW X4

BMW X4

이 차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접어두는 게 좋다. 첫인상은 낯설고, 운전석에서는 충분히 공격적인데 어떤 순간엔 귀엽기까지 하다. 전통적인 SUV의 디자인 언어를 밑바탕 삼되 지붕을 쿠페처럼 날렵하게 다듬었다. 제대로 ‘스타일리시’한데 BMW의 전통은 또 그대로 살아 있다. 이마가 둥글어서 순박해 보이지만 달려보면 여기가 트랙이 아닌 게 아쉬울 지경으로 질주할 수도 있다. BMW의 면도날 같은 핸들링이 그대로 묻어 있어서, 굽이굽이 꺾인 코너가 나올 때마다 한계를 시험하고 싶어진다.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서 나는 파찰음, 하지만 끝까지 쥐고 벗어나지 않는 고집. BMW를 운전하는 순수한 재미를 SUV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도로에선 다른 운전자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기도 했다. 호기심, 소유욕, 부러움, 생경함…. 이건 아무나 선택할 수 없는 차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감각의 사치 아닐까? 웬만한 험로는 웃으면서 지날 수 있는 사륜구동 성능도 갖추고 있다. 6천9백20만~8천6백90만원.


폭스바겐 투아렉

폭스바겐 투아렉

시동을 거는 순간 느껴지는 ‘좋은 차’라는 확신, 어떤 감성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저 신뢰하게 만드는 성격. 폭스바겐 투아렉이 사람이었다면 오래된 친구 사이였을 것이다. 2967cc V6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245마력, 최대토크 56.1kg.m을 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7.6초다. 투아렉은 폭스바겐이 만드는 대형 SUV다. 과연 담대한 크기, 주행 중에는 그에 어울리는 믿음직한 소리를 낸다. 가속페달을 잘게 쪼개 밟을 때마다 달라져서 듣기 좋은 소리, 기본기가 탄탄해서 주행 자체가 정확하니까 즐길 수 있는 배기음. 이 차에 다섯 명이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땐 다섯 명 모두 안긴 것같이 편안했다. 화려하게 꾸민 구석이 없고 자극적으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묵묵하게 만족시킬 줄 안다. 지금 단 한 대의 대형 SUV를 선택해야 하고, 그 차를 적어도 10년 이상 타야 한다면 투아렉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타면 탈수록 진가를 알게 되고, 몇 년 후에도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7천7백20만~9천7백50만원.


볼보 XC60

볼보 XC60

한국 수입차 시장의 저평가 우량주, 볼보의 대표 SUV다. 운전석에선 왜 볼보를 두고 ‘안전의 대명사’라고 부르는지를 즉시 체험할 수 있다. 사각지대 정보 시스템 블리스는 차선변경 가능 여부를 사이드미러의 경고등으로 알려준다. 불이 들어와 있으면 변경해선 안 된다는 뜻이고, 아무 표시도 없으면 안심해도 좋다는 의미다. 볼보의 자랑, 시티 세이프티 기능도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 시속 30킬로 미터 이하에서 주행할 때, 앞 차와의 간격이 위험할 정도로 좁아졌는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알아서 속도를 줄이거나 완벽히 정지한다. 이 외에도 여기에 다 쓸 수 없는, 평소에는 겪을 수 없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두를 보호하는 다양한 장비가 꼼꼼하게 적용돼 있다. 볼보는 나와 내 가족은 물론 차 밖에 있는 다른 사람까지 배려할 줄 안다. 그러니 스웨덴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탈 수 있는 진짜 SUV. 1969cc 직렬 4기통 직분사 디젤엔진은 181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40.8, 최고속도는 시속 210킬로미터다. 5천7백20만원.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사막만 빼고 거의 모든 길을 경험해봤다. 지난겨울 아이슬란드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것 같은 얼음 위를 새벽부터 밤까지 달렸다. 깊이 60센티미터에 달하는 강을 건너기도 하고, 살짝 얼어 있는 고속도로를 주파하기도 했다. 경주의 야산에서는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이 험한 오프로드를 통과했다. 2179cc 직렬 4기통 싱글 터보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190마력, 최대토크는 42.8kg.m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188킬로미터,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성능은 8.9초다. 디스커버리 스포트는 그 흔한 ‘도심형 SUV’와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요즘 유행하는 ‘컴팩트 SUV’로부터도 담백하게 거리를 둔다. 편의상 그렇게 분류할 수는 있어도 그 본질과 성격은 독보적이라는 뜻이다. 랜드로버는 1948년 이후 지금까지 67년 동안 사륜구동 SUV만을 만들어온 회사다. 디스커버리 스포트는 그들의 고집과 철학을 그대로 계승했다. 더불어 당대 가장 세련된 디자인 언어를 창조하는 데도 성공했다. 5천9백60만~6천6백60만원.


아우디 Q3

아우디 Q3

요즘 아우디는 제대로 물이 올랐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데 기본을 잃지도 않는다. 좌회전하려고 핸들을 돌리는 순간 깨달을 수 있는 우아함 혹은 고급함. Q3는 아우디가 만드는 컴팩트 SUV고, 아우디의 그런 성격이 고스란히 적용돼 있다. 1968cc 싱글터보 디젤엔진의 힘은 각각 184마력, 38.8kg.m이다. 차고 넘치는 건 아니지만 어디서나 모자랄 일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차분하게 채워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Q3는 과연 적확한 성능과 크기를 가진, 합리적인 성품의 SUV라서. 다만 아우디 특유의 감성 품질로 이 크기의 다른 모든 SUV와 스스로를 단호하게 구별 짓는다. 높이도 적당해서 타고 내리기 편하고, 운전석에서나 조수석에서도 거의 스트레스가 없다. 아우디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는 Q3를 사계절 신뢰할 수 있는 깊은 근거가 된다. 운전석에서 이렇게 풍족한 기분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다. 달리는 내내 ‘그래,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어?’ 조용히 되묻게 되는 순간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5천1백90만~5천6백50만원.


포드 익스플로러

포드 익스플로러

한국 수입 SUV 시장의 숨은 강자다. 모두가 독일차만 바라보고 있을 때 가만히, 조용하고 꾸준하게 많이 팔린다. 운전석에 앉아보면 과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흔히 SUV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지점을 과연 넉넉하게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이것을 미국차의 미덕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포드 익스플로러는 편안하고 아늑하다. 조바심 같은 건 배운 적도 없다는 듯한 그 당당한 풍채에는 위엄이 있고, 시트는 몸을 부드럽게 안아준다. 다분히 가족을 생각하고, 자녀를 바래다주는 아내를 배려하기도 한다. 이 광활한 트렁크에 실을 수 없는 건 뭘까? 일상적인 쇼핑이나 주말의 가족 캠핑,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라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군더더기 없이 편안한 미국식 합리와 세련을 보태면 포드 익스플로러의 정체성이 완성된다. 1999cc 싱글터보 가솔린 엔진을 쓰는 2.0 에코부스트 모델은 4천7백80만원, 3496cc V6 자연흡기엔진을 쓰는 모델은 5천4백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