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황량한 땅에서 내가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운명은 모든 것들이 의문의 덩어리가 되어 다가오면서 그녀는 절규한다.
뮤지컬 덕혜옹주! 조선의 마지막 왕족으로 나라가 지니고 있는 그 운명의 끝자락에서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감수하여야 하였던 고종황제의 늦둥이 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 무대 위의 노래가 들려오는 동안 종종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들려오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음률 속에 뭉크의 그림 절규가 겹쳐진다.
어떤 절박함으로 저런 표정이 될까? 어떤 두려움으로 저런 모습이 될까? 아직은 세상을 모르던 시절에 나는 왜? 가 아닌 어떻게? 라는 강한 의문을 지닌 적이 있었다. 그 후 종종 세상을 향한 어떤 두려움을 느낄 때 생각하게 되던 뭉크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표정처럼 덕혜옹주 그녀는 그렇게 절망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의 사랑은 사면이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어느 병원의 구석진 곳에 자신의 영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마지막 운명 같았던 여인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대마도로 가게 되면서 조국과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였던 덕혜옹주는 지난 시간의 모든 것들을 잊지 않으려 하였고 덕혜옹주를 받아들인 그녀의 남편 소 다케유키도 시대와 가문에 갇힌 채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였다. 덕혜와 다케유키 사이에서 일본인도 조선인도 될 수 없는 딸 정혜의 고통 역시 시대적인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결코 한 개인의 삶이 아닌 역사의 한 모습으로 지니고 가야 하는 고통임을 알려주고 있다.
‘함께 살아가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리고 ‘함께 살고 싶지만,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의 이야기를 과거를 통하여 그리고 오늘에서 바라보는 새로움으로 그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덕혜옹주라는 이름을 우리는 역사 시간에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덕혜옹주(1912~1989년)는 탄생 100주년이 되는 시기에 작가 권비영(2009년 집필)에 의하여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을 받게 되었다. 어느 잡지의 인터뷰에서 덕혜옹주의 원작자 권비영 씨는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라는 내용의 말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작가는 그 책을 쓰기 위하여 꽤 여러 번 대마도로 덕혜옹주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스쳐 지나가 버릴 수도 있었을 여린 영혼의 소유자인 덕혜옹주를 시대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잊혀 가던 한 여인의 슬픔과 절망이 나라의 운명과 함께하고 있었음을 생각해본다.
깊은 슬픔만큼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는 엄마 덕혜. 그 엄마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딸 정혜. 조선의 운명 같은 여인을 사랑하고자 하였던 대마도의 일본 귀족인 남편 소 다케유시. 나라와 나라가 만들어가는 정략결혼으로 개인의 삶은 처절하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그녀의 절박함은 선잠이 깨어난 새벽에 또다시 달라질 것 없는 현실 앞에서 목울대까지 올라온 울음을 삼키느라 온몸을 들썩이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녀의 뒷모습으로 전달되는 절박함이다.
뮤지컬 배우 문혜영은 덕혜옹주와 옹주의 딸 정혜까지 일인이역의 배역을 음성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완벽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변화되는 목소리로 알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음성이 지니고 있는 표정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의 확인이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목소리의 표정으로 관객은 몰입의 수치를 높여간다.
스스로 배역에 몰입되어서 흘리는 그녀의 눈물에 전율을 느끼면서 진한 감동의 공감대가 객석에 불이 켜지고 그녀가 부르던 엔딩송의 여운으로 잠시의 침묵이 흐른다. 누군가가 먼저 일어서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금 더 길게 그 침묵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덕혜옹주가 지니고 살아야 했던 그 운명의 절망감을 우리는 문혜영이라는 뮤지컬 배우의 음성으로 전달받은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살아왔던 개인의 운명을 먼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대학로의 연극무대에서 만나던 날이다. 여리고 순결한 품격 있는 영혼이 역사라는 커다란 붓 자락으로 휘감겨진 것 같은 운명이 되어서 온몸으로 소리 없는 오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은 세필이 지니고 있는 미세한 서러움이 되어서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왕족이 겪어야 하는 모진 삶으로 무대 위에서 노래가 되어 관객과 함께 하나의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인간은 감당하지 못하는 슬픔을 맞이할 때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적인 보호본능으로 그 의식의 심층 지대로 도망을 가고자 한다. 거부하고 싶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서 그녀는 정신의 불모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그녀가 부르는 영혼의 노래가 6월의 여름날 숲길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가늘고 깊은 때로는 저항의 의지를 담은 굵직한 선율이 되기도 하면서 깊고 깊은 영혼의 아픔을 지닌 덕혜옹주를 뮤지컬 배우 문혜영을 통하여 하나의 실체가 되어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혈통의 품격과 그녀가 아끼고자 했던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처절한 운명의 메아리가 되어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