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때가 많다. 보지 못한다기보다 착각이 옳은 표현일 듯하다. 60 중반을 살았으나 오늘도 또 다른 나를 생각하는가 싶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그중의 하나가 나이이다. 시대가 바뀌고 물질문명이 달라져 수명이 늘어난 이유도 한몫하지 싶다.
늘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팔청춘인 양 행동한다. 좋은 현상이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이 몸에 무리를 가져오게 한다. 술자리에서 더욱 그러하다. 예전의 버릇대로 남들이 권하면 사양하지 못하고 받아 마신다. 주법을 들먹이며 곧장 잔을 되돌려 준다. 연배들과 함께하면 예의상 먼저 술잔을 올린다.
으레 상대방은 다시 잔을 되돌려 주기 마련이다. 결국, 또 마시게 된다. 선천적인 주량과 몸에 익혀 온 주법으로 행동이 쉬이 흐트러지지는 않지만, 몸에는 지나쳤음이 감지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다음 날로 넘어간다. 이튿날에 무리가 따른다. 착각이 불러온 결과다.
무거운 물건을 움직이는데도 그렇다. 한창나이의 젊은이들처럼 달려든다.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허리와 등이 몸살을 한다. 음식을 앞에 둔 경우도 비슷하다. 예식 홀의 뷔페식이 그렇다. 눈과 입에서 당겨주어 과식하기 일쑤다. 소화기능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화력이 떨어졌음은 속일 수 없는 현상이다. 현실로 인식하지 않는 착각에 빠져 있다. 작은 돌멩이도 삭인다는 젊은 시절의 생각에 멈춰 있는지 모른다.
저녁엔 나이에 걸맞게 다소 적게 먹어야 하는데도 구미가 당기는 대로 즐기는 때가 많다. 소화는 되지만 틀림없이 다음 날 아침이 평소보다 피곤함을 느낀다. 소화를 시키는데 밤새 몸이 무리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었음을 인식하지 않는 착각이다. 술에 취한 취객이 자기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현상과 같을 수도 있겠다.
세월의 흐름이 하도 빨라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지 못하고 몸의 기력이 약해졌음을 인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전제되어서라고 봄이 좋을 듯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뒷짐 지는 나약함보다는 훨씬 긍정적이지만, 자신의 현실을 아는 것도 노후를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나이가 들었음도, 신체의 기능이 쇠퇴하였음을 새겨보는 것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마음도 늙은이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체력과 나이에 따른 적절한 행동이 필요하지 싶다. ‘분수를 알라.’ 하시던 어른들의 얘기가 이제 전해진다. ‘너 자신을 알라.’ 선각자의 얘기가 가슴에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