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내 수직정원이 돋보이는 ‘식물원 K’. ‘식물원과 키친’이 합쳤다는 뜻이다. 2·3 유니스 정원의 꽃밭 겸 새들 쉼터와 음식. / 이경호 영상미디어기자, 김형섭 사진가·경기문화나루·브로커리 제공
◇"비로소 땅에 다리를 딛고 선 기분"
어린 시절 눈을 휘둥그레 하게 했던 건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이었다. 63빌딩 층수를 세보겠다고 하염없이 시도하다 목디스크 일보 직전까지 가고, 홍콩과 뉴욕의 마천루에 푹 빠져 이 방 저 방 빌딩 사진으로 도배를 했다. 집 앞 텃밭 같은 건 언제든, 아무나 쉽게 가꿀 수 있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언제였던가. 흙냄새를 맡고 땅을 제대로 밟아본 지가…. 때로는 융단처럼 폭신폭신했고, 혹은 심통 난 마음처럼 시커멓고 딱딱했던 것 같다. 이름 모를 풀의 신세계를 발견했던 건, 유명 레스토랑의 파스타 위에 올려진 갖가지 허브향을 맛봤을 때일 게다. 그래서일까. 지금 저절로 경탄을 내뱉게 하는 건 초록빛 가득한 수풀이다. 초여름 햇살을 머금은 초록잎은 초현실적으로 광채를 낸다. 지금 알고 있는 색채표안의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 불가능할 듯하다.
경기도 안산 '유니스의 정원'을 찾았을 때가 그랬다. 서울서 차로 30~40분이면 닿는 곳에서 발견한 일종의 '비밀의 정원'인 셈이다. 1만㎡(약 3000평) 부지에 펼쳐진 계류정원· 새들의 쉼터·바람의 정원 등 테마 공간은 주인의 배려와 아기자기함에 다시 놀란다. 10년 전,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를 박차고 나와 '꿈'을 향해 이곳을 찾았다는 지승현 대표의 솜씨다. 3년 넘게 땅을 일궈 2007년 감성적인 정원을 열었다. 텃밭 재료를 이용한 음식의 레스토랑도 열고, 지난해엔 식물원 스타일의 이풀실내정원도 선보였다. "경영학과를 나와 꿈꾸던 직장에 갔지만, 막상 직장에 다녀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아침이 오는 게 싫었죠. 지금요?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며 항상 기다려져요." 여러 조경 전문가가 조언했던 짜인 틀에서 벗어나려 했다. 너무 반듯하기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손이 가면 가는 대로,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일궜다. "땀 흘린 만큼 반드시 보답이 돌아와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인간으로 태어나 땅에 두 다리를 제대로 딛고 선 기쁨을 이제사 느낀달까. 역시 사람은 자연 속에 있는 게 정답인 거 같아요."
〈"마 뤼, 스파벤타토 디 탄토 구소, 스캅파바" 그녀는 소리쳤다. 독일어로 번역하면 "너무도 화려함이 넘치니 고양이가 놀라서 도망친 거지요"라는 뜻이다.〉(헤세, 이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中)
4 틸테이블에서 인기 있는 조경 아이템. 5 조형미가 돋보이는 틸테이블의 선인장. / 이경호 영상미디어기자, 김형섭 사진가·경기문화나루·브로커리 제공
◇"반려식물의 시대…식물에서 우리가 보인다"
식물을 가까이하면 사람은 다 비슷해지는 걸까. 비슷한 사람들이 식물과 친해지는 걸까. 유니스의 정원 지승현 대표와 거의 유사한 이야기를 식물원K 송웅호 대표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그는 "노동의 대가가 명확한, 상쾌한 아침을 맞고 싶어 이 일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수직 정원 레스토랑인 식물원 K를 운영하는 송웅호 대표는 벽면조경 전문회사 그린와이즈의 대표이기도 하다. 서울 플라자호텔 벽면조경을 비롯해, 서울시청 별관, 서울 중구청 등 유수의 외벽 조경을 담당한 대표적인 회사다. "식물이 단지 벽지 대용이 아닌 생명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감동을 주고 싶었죠. 이곳(식물원 K)은 원래 쇼룸이었는데 사람들이 좀 더 오랜 시간 머물며 식물을 알아갔으면 했어요. 그러다 식당도 열게 됐죠." 이곳에 들어오면 벽면 가득히 메운 식물에 놀란다. 제주도 깊은 숲 속에 들어온 듯, 신비하면서 아늑하다. 각종 블로그의 사진을 보고 반해 찾았지만 실제로 보니 더 몽환적이다.
넉줄고사리, 아이비, 산호수, 푸밀라, 쉐프레라, 남천 등 어디서 본 듯하지만 생소한 식물들이 벽을 가득 메운다. 센서가 내장돼 수분·조도 등을 생육에 맞게 자동 조절한다. "반려식물이라고 하잖아요.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서로 의기투합하는지 삶이 보여요. 가끔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제가 중재자가 되기도 하고요. 가끔 보면 꿀을 과도하게 뿌리는 친구가 있는데, 그러다 군집으로 꿀이 흐르는 게 보이거든요. 옆에 진딧물이 왔을 때 그들끼리 알리는 일종의 봉화 같은 신호죠. 살리실산메틸 같은 물질을 뿌려 해충을 내쫓으려는 몸부림이죠." 몸살 앓듯 힘들어하다 견디고, 또 쓰러졌다 그다음 날엔 더 건강해져 일어나는 게 일상의 반복이다. 식물에서 사람을 본다는 게 그의 말이다.
〈경이로운 생명력이 넘치는 목련과 물질로부터 멀리 떨어져 놀랍게도 순수한 정신으로 분한 난쟁이 분재 사이에 유희를 관찰한다. 둘은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로 나름의 권리를 갖고 있다. 때로 그것은 내게 깊은 궁핍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현실을 과장하고 환상적으로 볼 권리를 주기도 한다.〉(헤세)
6 틸테이블에서의 집안 조경 견본. / 이경호 영상미디어기자, 김형섭 사진가·경기문화나루·브로커리 제공
◇"척박한 땅을 헤친 선인장, 우리 인생의 은유"
가드닝·실내조경 전문회사 틸테이블의 오주원·김미선 대표도 약속한 듯 "반려식물"이야기를 꺼냈다. 서울 자곡동 본사에 이어 신사동 가로수길에 가드닝 아카데미 등을 연 그는 최근 선인장과 다육식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조형적이고 수직적인 디자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 같기 때문이다. 키우기도 쉽고, 인테리어대용으로 선인장을 찾는 이들도 대폭 늘었다. 전문적으로 가드닝을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거칠게 큰 아이들이라 악조건에서도 잘 견뎌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고 자라 벌레도 잘 안 먹고 잘 견디는 편이죠. 우리 인생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선인장은 밤에 산소를 내뿜기 때문에 침실에 두면 더욱 효과적이다.
정원을 지나 숲으로 간다. 자연이 분명 주변에 있음에도 이렇게 찾아가서까지 경탄하고 있는 건 '바쁘다'는 용어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주인의 소홀함 속에도 책상 위에서 꿋꿋하게 버티던 화분 속 잎이 오늘따라 생기를 잃은 듯하다. 한번 보듬어 줘야겠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들이다. 특히 우리의 눈, 너무 혹사당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의 눈은 마음만 먹는다면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능력이 있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친구들이여!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을 놓치지 말자.〉(헤세)
여행 수첩
1. 마이알레
홈 가드닝부터 보태니컬 아트 실전 수업, 가든 쿠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상·하반기 정규 커리큘럼도 있는데, 하반기엔 인기 클래스인 ‘조윤범(바이올리니스트)의 클래식데이’ ‘현대음악 앙상블 팀프 timf 콘서트’ ‘안보현의 오페라 토크 콘서트’ 등이 준비돼 있다.
여름 특별 강의도 있다. 8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재즈 페스티벌, 조윤범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디즈니 &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원데이 가드닝 클래스는 어린이를 위해 정물화 그려 보기, 식물 세밀화 그린 후 표본 제작, 미니 테라리움 만들기 등으로 구성된다.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434-3. (02)3678-9468
2. 유니스의 정원
이국적인 야외 정원이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중 이풀실내정원은 유리온실 스타일의 3층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식물전시관, 가든센터, 레스토랑등을 갖추고 있다. 피톤치드 체험관도 있다. 월요일 휴무. 경기도 안산시 팔곡일동 163-2. (031)437-2045.
7·8 있기만 해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것 같은 유니스의 정원. / 이경호 영상미디어기자, 김형섭 사진가·경기문화나루·브로커리 제공
3. 식물원K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바로 근처에 있다.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 미나리, 양파, 매실 장아찌 등으로 새콤달콤한 목살스테이크비빔밥을 비롯해 연어새싹비빔밥, 치킨데리야키비빔밥 등이 일품이다. 2만8000원(2인)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85-9번지. 월요일 휴무. (031)321-9084
4. 틸테이블
인테리어 디자인과 화기 디자인, 실내 조경 컨설팅 등을 하는 틸테이블은 서울 자곡동과 신사동 가로수길에 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가드닝과 플라워 수강은 가로수길에서 이뤄지며 취미반(8회)과 전문가반(15회)으로 나뉜다. 수시 모집. (02)544-7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