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오리지널, 독서·수학 뮤지컬…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공연이 오른다

눈과 귀의 호사(豪奢)였다. 배우 10명이 쉴 새 없이 기타·베이스·드럼·트럼펫을 비롯한 무대 위 악기들을 바꿔가며 연주하는 동시에 노래를 불렀다. '올슉업''영 원스''본 투 비 와일드' 같은 올드 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리어왕'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극의 온갖 대사들이 쏟아졌다.

이 작품은 지난 26일 제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개막작으로 대구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영국의 '포비든 플래닛'. 셰익스피어 후기 희극'템페스트'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삼고, 1950~60년대 B급 SF영화 분위기로 만든 뮤지컬이다. 국내에서 2002년 라이선스 공연된 적이 있지만, 오리지널 팀의 내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서울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DIMF만의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13일까지 계속되는 국내 최대 뮤지컬 페스티벌 DIMF는 메르스 사태 속에서도 예정대로 일정을 시작했다. 대형 공연장에 열 감지기를 설치했고, 소극장에선 입장하는 관람객의 체온을 일일이 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구의 뮤지컬 열기는 꺾이지 않았다. 27일 두류공원에서 열린 개막 축하 공연에는 관객 1만5000명이 몰렸고, 동성로 뮤지컬광장 등에선 표를 사려는 관객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올해 행사에는 '독서'를 주제로 한 '넌 리딩 클럽'(대만)과 '잭 더 리퍼'의 또다른 버전인 '팬텀 오브 런던'(체코), 밥 포시 안무가 포함된 '스윗 채리티'(독일), 위안부를 다룬 '꽃신'(한국) 등 공식 초청작을 비롯해 모두 19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영남 각 지역 제작 뮤지컬인 '투란도트'(대구) '태화강'(울산) '정도전'(영주)도 공연된다.

DIMF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이번에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4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 27일 개막한 '이상한 나라의 안이수'는 수학(數學)을 주제로 한 독특한 어린이청소년 뮤지컬로,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재치 있는 음악과 안무, 주인공이 '소수 마을' '무리수 마을' '음수 마을'로 여행할 때마다 달라지는 배경과 의상,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의 밀도를 더했다.

같은 날 개막한 '오스카 그래미 사이영'은 성공을 갈망하는 영화감독, 래퍼, 야구선수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조명과 무대·음향 등 기술적인 면에서 보강할 부분이 많아 보였지만,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삽입곡과 매력적인 줄거리는 뮤지컬이 '꿈과 희망의 장르'임을 새삼 일깨웠다. '역전에 산다'와 '지구 멸망 30일 전'도 DIMF에서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053)622-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