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30 09:46

올해 94세 된 할아버지 한 분은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몇 년 전부터 노는 빈터를 이용해 텃밭을 가꾼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다. 백수를 하고도 남을 것 같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엔 텃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텃밭이 넓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채소를 심는다. 고추, 오이, 상추, 열무, 더덕도 자란다. 주변에 긁어모은 부엽토를 사용한다. 늘 즐거워한다.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일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할아버지가 텃밭 가꾸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되셨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할아버지는 이런 꿈을 꾸지 않을까? 내년 봄에 어떤 채소를 심을지를 계획하지 싶다. 할아버지에겐 텃밭이 한가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고 살아가는 희망이요, 생명의 끈인 셈이다. 여가 활동은 거창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상을 무료하게 보내는 시니어들에 모범이 되지 않을까?

[시니어 에세이] 텃밭 가꾸는 94세 할아버지

메르스로 나라 안팎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혀 예측하지 않은 질병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한다. 체력이나 면역력이 약해진 시니어들에 더 불안한 요소로 등장한다. 평소 면역력을 높이는 섭생(攝生)이 필요하다. 건강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운동과 음식을 통해서 건강을 스스로 챙김으로써 수명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병들어 지내는 시간도 줄었다. 우리가 농담으로 하는 9988234를 얘기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은 후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만 현실화한다. 수명이 곧 건강수명과 같아진다. 물론 불치병이라든지 교통사고, 메르스 같은 질병에 의한 사망을 제외하면 수명이 곧 건강수명(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상태)이 된다.

식물인간으로 병실에 갇혀 있거나 의학과 의술의 도움으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한 생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장수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도록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최근 메르스로 무엇보다 체력과 면역력을 높이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한가한 시간이 많은 시니어는 자칫 잘못하면 나태해지는 경향이 있고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기도 한다. 도심에 사는 시니어들은 미세먼지나 자동차의 매연, 먹거리를 통한 중금속 오염과 농약의 잔류 등 위험에 노출되어 시달린다. 콘크리트로 둘러쳐진 삭막한 도시 환경 또한 그렇다. 안전한 먹거리와 맑은 공기와 햇볕을 쬐면서 더 여유로운 일상이 필요하다.

하루에 자연과 함께 여가생활을 5시간 이상하면 암을 49% 예방할 수 있고 2시간 반 정도여도 39%나 막을 수 있다 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은 곧 천연항암제 역할을 한다. 그 방법으로 텃밭 가꾸기가 있다. 신체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 그리고 정신적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어서다.

지금부터 160년 전에 독일의 슈레베라는 의사는 환자들에게 약 처방전 외에 또 하나의 처방전을 써주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햇볕을 쬐고 푸른 채소를 가꾸는 농사일을 하세요.”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텃밭 가꾸기가 건강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직접 가꾼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도 큰 이유지만 텃밭 가꾸기를 통해서 신체적 건강을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흙과 함께함으로써 자연으로의 회귀 본성을 깨울 수 있고 어릴 적 자연에서 뛰놀던 추억으로의 회상에 젖을 수 있다. 몸과 마음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자녀출산 중단, 노동력 상실, 사회적 역할 감소 등에 따른 위축감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도 건전한 소일거리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후의 가장 큰 복병은 할 일 없이 보내는 무료한 일상과 건강하지 못한 것이기에 다양한 유용성을 가진 텃밭 가꾸기는 그러한 복병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다. 한 생명보험사에서 빅데이터 분석에서 시니어들의 5대 키워드 중에 하나가 텃밭이었음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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