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02 09:44

“초경(初更)이나 되어서 동파역에 이르렀다. 파주 목사 허진과 장단 부사 구효연이 파견된 관리로 하여금 그곳에서 임금께 드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위하는 사람들도 종일 굶어가며 왔기 때문에 음식이 있는 것을 보자 요란스레 주방으로 들어가 함부로 빼앗아먹었다. 이렇게 되니 임금께 드릴 음식마저 없어질 지경이라, 이 꼴을 당한 허진과 구효연은 어쩔 줄을 몰라 도망가 버렸다.”

최근 ‘징비록’을 읽으며 참화의 서곡에 불과한 이 형국을 대하자니 그저 기막힐 뿐이었다. 선조 때 좌의정이었던 류성룡은 모든 관직에서 물러난 만년에 임진왜란 7년 동안 조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해 책으로 남긴다. 바로 ‘내가 스스로 반성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의 징비록이다. 내가 속한 실버독서회에서 읽을 목록에 들지 않았더라면 들춰볼 일이 없었을 성싶은 책이다. 역사에 자기 잘못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은 없다지만 ‘전시 재상’ 류성룡은 달랐던 인물로 평가되기에 징비록의 대목 대목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을 현재와 연결해보게도 됐다. 둘이서 왜의 동향을 살피고 돌아와 임금께 병화의 기미가 있다고 보고한 황윤길, 그가 공연히 민심을 동요시킨다면서 기미가 없다고 보고한 김성일. 지금 황 같은 사람은 누구이고, 김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결국 왜의 침략으로 임금은 도망가고, 국토와 백성은 얼마나 유린됐던가. 한자 원문을 한글로 친절하게 풀어 펴낸 책이라 읽기에 부담은 없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Give me tomorrow!”

▲지난 현충일 아파트에 조기 게양된 태극기.
▲지난 현충일 아파트에 조기 게양된 태극기.

무엇이 어떻게 유사한가 헤아려보기에 앞서 임진왜란에서 6․25전쟁을 보게 되어 더욱 그러했다. 서양에선 6월이라면 최고로 축복받는 ‘6월의 신부(June Bride)’부터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와 동격이자 쥬피터의 아내인 결혼의 여신 유노에서 6월의 이름이 비롯됐고, 이로 인해 6월에 결혼하면 운이 따른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6월은 먼저 6․25가 생각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내 경우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인데도 이 아름다운 계절에 참화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직접 겪은 세대는 오죽할까.

영화며 소설, TV 드라마를 통해서 숱하게 접해왔던 임진왜란이다. 그런데 학문적으로나 사료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으로서 징비록을 읽자니 담담히 서술된 문장 한 줄에도 가슴이 움찔거렸다. 6․25의 기록으로는 미국인 종군 여기자로 맹활약했던 마가렛 히긴스가 쓴 ‘War in Korea’가 그렇지 않을까. 그녀는 6․25의 거의 모든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생생한 전쟁기사로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병들에게 수혈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그녀는 르포를 책으로 펴냈고, 국내에서는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출간됐다.

어느 날 히긴스는 영하 40도의 강추위와 폭설 속에서 연합군과 중공군이 맞붙은 전투를 취재한다. 그녀 옆에서는 흙과 얼음으로 뻣뻣해진 군복에 더부룩한 수염, 눈도 제대로 못 뜰만큼 지친 모습의 병사가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얼은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녀가 물었다. “만일 제가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 하느님이라면 제일 먼저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잠시 후 병사는 이렇게 답했다. “Give me tomorrow(내게 내일을 주십시오)!”


‘징비’에 실패한 징비록

극적인 요소들을 가미했으리라 지레 짐작되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와는 달리 사실에 근거한 전쟁 기록물은 진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실제 겪은 이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얼마나 더 크게 가슴에 와 닿을까. 임진왜란이야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서는 직접 듣는 게 불가능한 일이지만 6․25는 아직도 그 아픔이 생생한 시니어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1930년생이라는 독서회의 한 어르신이 그런 분이다. 그분은 어떤 책을 읽고 토론하든 간에 마침표는 늘 ‘국가안보’다. “안보 없이는 모든 게 다 헛것”이란 결론이시다.

처음엔 솔직히 ‘또 그 얘기신가’ 싶었다. 하지만 징비록과 같은 기록물을 읽으면서 그 어르신께 오히려 요청하게 됐다. “말로든 글로든 전쟁을 통해 절감하신 걸 많이많이 전해주세요.” 지난해 한 모임에서 만난 전몰군경미망인회 회원 한 분에게서는 6․25로 남편도 재산도 다 잃고 자녀를 돌보며 헤쳐 온 역경의 세월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이런 분들만도 수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면서 임진왜란이나 6․25나 전쟁이 백성을 얼마나 도탄에 빠지게 하는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겪은 이로부터 직접 듣는 전쟁은 가슴에 파고드는 힘이 셌다. 동시에 그 힘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 특히 젊은이들에게 전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시니어세대의 의무이자 권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징비(懲毖)’에 실패한 징비록이 될 수 있음에랴. 숙종 때인 1695년 일본에서 징비록이 번역 출간됐으나 서인(西人) 정권이던 조정이 금서로 지정한 바람에 누구도 읽을 수 없었다. 그렇게 400년이 흐른 후 조선은 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아 36년간 식민지에 놓이고 만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전쟁을 경험한 시니어들은 그 참화를 얘기해야 한다. 귀 기울이게 해야 한다. 조국이 국방의 힘을 잃었을 때 겪어야 하는 수모와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역사책보다는 경험자로부터 직접 듣는 얘기가 더 힘이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 무슨 보수며 진보며 색깔을 얹는단 말인가. 소통의 방법과 도구가 넘쳐나는 이제, 들은 바를 더 젊은 세대에게 다시 전하는 릴레이가 이뤄지면 좋겠다. 오직 ‘내일’을 소원했던 병사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내일이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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