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세계시장 질주에… 국내 자동차株 '후진'

글로벌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판매 호조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주가에 악재가 되고 있다. 저유가로 SUV나 픽업 트럭의 판매가 계속 늘고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SUV 라인업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용차와 달리 SUV나 픽업 트럭(짐칸에 덮개 없는 소형 트럭)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발 주자인 중국 업체들이 SUV 생산 및 판매에 집중하면서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부진으로 부품 업체들의 실적도 악화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완성차·차 부품주 계속되는 추락

올 들어 현대차의 주가는 7일까지 22%가량 하락했다.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15.7% 주가가 빠졌다.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 및 유로화가 올 들어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자동차 소비 트렌드가 바뀐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량은 대부분 전년 대비 감소했는데, 현대차는 내수와 해외 판매가 모두 감소했다. 내수는 전년 대비 3.0%, 해외 판매는 3.2% 줄었다. 기아차는 전년 대비 1.2% 감소한 152만9441대를 판매했는데, 특히 해외 판매의 감소 폭(-3.1%)이 컸다.

부품 업체들의 상황은 더 안 좋다. 완성차 업체의 부진이 주가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위아가 올 들어 45.1% 하락했고, 만도는 같은 기간 주가가 39% 빠졌다. 평화정공·한라비스테온공조·에스엘·현대모비스 등 다른 부품주들도 일제히 약세를 기록하고 있다.

채희근 현대증권 연구원은 "현대기아차의 판매 부진으로 국내 주요 자동차 부품사들의 2분기 실적도 부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2분기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총생산(출고)은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저유가에 글로벌 트렌드 바뀌어… 환율 효과에 이중고

증권 전문가들은 저유가로 인한 자동차 소비 트렌드 변화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판매량과 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대기아차는 세단이 주력 제품인데, 저유가로 SUV와 픽업 트럭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차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가 주춤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시장의 SUV 판매량 추이를 살펴보면 최근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픽업 트럭과 밴을 포함한 지난해 SUV 판매량은 875만대로 전년보다 10.1% 늘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시장의 제품 비중이 승용차 46%, SUV 54%로 더 크다. 승용차의 경우 올해 4월 기준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12.8%인데, SUV는 4% 수준이다. 일본 경쟁사인 도요타(12.8%), 혼다(7.8%), 닛산(6.9%)에 크게 뒤처지는 숫자다.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 및 유로화의 약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SUV 라인업의 부재가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트렌드가 승용차가 아닌 SUV 위주로 급속히 변화되면서 현대기아차의 제품 믹스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현지 업체 도전도 부담

가장 큰 수출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 현지 업체들이 SUV 개발과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주가에 부담이 된다는 분석이다.

올해 1분기 중국의 세단 판매는 0.36% 감소한 반면 SUV 판매는 49% 증가했다. 1분기 SUV 판매량의 56%를 중국 업체가 차지했을 정도로 중국 업체들은 저가 SUV를 앞세워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상황이다. 중국 현지 업체인 창청자동차·창안자동차는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100%가량 늘었다.

다만, 하반기 현대기아차의 SUV 라인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다소 개선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기아차의 주력 SUV인 스포티지(QR)가 출시되면 기존 카니발, 쏘렌토와 더불어 SUV 제품 라인업이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