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09 13:36

메르스 때문에 일주일간 학교도 유치원도 학원도 방학이란다. 모든 공연은 취소되었다. 이틀을 아이들과 보냈는데 정말 힘들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텔레비전 만화 보려 하고, 게임을 하든지 핸드폰만 들여다보려 한다. 어른들도 좋아하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런데 아이들을 이렇게 내버려두기에 맘이 영 편치가 않다. 그냥 놀이를 할 때는 말도 많아지고 웃음도 많고 움직임도 많고 서로 마음이 오고가는데 이런 것에 빠지면 아이들의 모든 것이 정지된다.

아이들을 내가 사는 전원마을로 데려왔다. 아침식사 후 하루 시간표를 짜서 우선 한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있게 한다. 이제 저희들이 먼저 시간표를 짠다. 공부가 끝나고 산책 시간에는 뒤 텃밭에서 무당벌레 열 마리 잡아오기, 질경이 나물 뜯어오기 미션을 주기도 한다.

햇빛이 싱싱한 초록의 나뭇잎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자지러드는 듯한 웃음소리와 질러대는 소리가 내게 숨을 쉬게 한다. 산속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이들을 반가워한다. 뻐꾸기도 찌르르새도 반가워한다. 바람도 나뭇잎도 나비도 풀벌레도 아이들과 함께 뛰어논다. 부엌일을 대강 마치고 간식으로 삶은 감자를 들고 나갔더니 손주 하는 말 "할머니 일하고 새참 먹는 기분이에요" 한다. 미션 수행하느라 얼굴이 벌겋고 상기된 표정이다.

들어와서 한 시간 동안 텔레비전 보기.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점심 식사시간 후엔 자유 시간, 이때는 게임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소리 없이 잘 논다. 나는 이때 저녁 준비를 한다. 아이들과 요리를 하려면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하므로.

[시니어 에세이] 아이들과 함께 메르스 방학

오후 산책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여긴 산속이라 버찌도 많고 오디도 따 먹을 수 있다. 나무 밑에는 열매가 떨어져 땅이 거뭇거뭇한데 뛰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두 눈은 생기 넘쳐 반짝이고 얼굴에는 땀이 범벅이다. 아파트에선 아래층 조심하느라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여기서는 소리도 마음대로 지를 수 있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물 만난 고기 같다

오늘 요리는 시래기 햄 주먹밥이다. 푹 삶아 껍질을 벗기어 부드러운 시래기를 맛있게 볶아놓고 닭 가슴살과 햄, 삶은 당근과 양파를 아이들에게 잘게 썰라고 맡긴다. 아이들은 요리 시간만 되면 시끄럽고 말이 많아진다. 먹느라 바쁘고 떠드느라 바쁘고 입이 바쁘다. 자유자재의 모양으로 썬 재료들을 큰 그릇에 넣고 비닐장갑을 끼고 버무리면 끝이다.

처음 아이들과 요리를 시작할 땐 서로 먼저 하겠다고 삐치고 울고 하였는데 이젠 제법 기다릴 줄도 양보할 줄도 안다. 할머니의 끊임없는 칭찬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일회용 비닐장갑과 커다란 그릇은 필수다. 여섯 개의 손이 한꺼번에 비벼야 하므로. 본인이 원하는 모양과 크기대로 각자 접시에 담아 먹는다. 녀석들 배부르게 먹었는지 더 먹겠단 소리를 안 한다. 덕분에 내 배도 부르다. 나는 오늘의 미션을 이제 끝냈다. 오늘 하루 아이들과 할머니는 메르스 때문에 생긴 힘든 방학을 즐겁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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