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株 옥석가리기 시작… 앞으론 무조건 오르는 일 없을것"

지난해 여의도에선 첫 30대 주식운용본부장(CIO)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바로 유경PSG자산운용의 강대권(35) 본부장. 주식운용본부장은 시장의 큰 흐름에 따른 중요한 투자 결정은 물론, 인력(매니저) 관리까지 총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40대 이상 연륜이 쌓인 인물이 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비록 소형 운용사이긴 하지만 99학번 '젊은 피'가 CIO 자리를 꿰찬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강 본부장은 지난 2007년 가치 투자로 유명한 한국밸류자산운용에 입사해 6년간 일했고, 지난해 유경PSG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취임 후 지난해 8월 선보인 '좋은생각자산배분형펀드'는 기존 운용 업계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철학을 가진 펀드다. 주식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연 10%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는 "펀드 내 주식 비중을 제로에서 100%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면서 "거품 낀 주식이 많으면 현금 비중을 높이고, 시장이 공포감에 휩싸이면 주식을 사들인다"고 말했다. 설정 이후 19.3%(6월 말 기준)의 수익률을 올려, 코스피 수익률(2.12%)을 크게 웃돌았다.

펀드 내 현금 비중을 현재 40%까지 늘려놓았다는 그는, 최근엔 시장이 정상화되기만을 '이를 악물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에 제약과 바이오 주식은 전혀 들고 있지 않다 보니 최근 상승장에선 상당히 고통스럽다는 고백도 했다. 하지만 바이오 거품 논란이 불거지면서 시장이 전체적으로 크게 흔들린 지난 7일 이후, 드디어 쇼핑해도 좋을 만한 알짜 종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강 본부장은 "일부 제약·바이오 업종은 기업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가격이 많이 올라 거품이었고, 마구 부풀어 오르다가 스스로 꺼지기 시작하는 모습"이라며 "치솟는 주가에 도취되었던 투자자들이 새삼 급락 리스크(위험)를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날마다 주가가 무차별적으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버블인가.

"국내 바이오 주식 중 구체적으로 수출 계약을 체결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 곳은 한미약품, 셀트리온, 메디톡스 등 3개사 정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사명에 '바이오'란 말만 붙으면 전부 다 그런 수출 계약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투자를 했다. 코스피, 코스닥은 물론, 코넥스, 심지어 비상장 주식까지 바이오 업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기증 나게 올랐다. 제약·바이오 업종을 누구보다 열심히 파헤쳐 봤고, 해당 산업의 기술 개발 성과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충분히 알게 됐다. 그래서 일부 제약·바이오 주식을 편입해 30~40%씩 수익도 냈다. 제약·바이오 업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투기적이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땅한 성장주가 보이지 않는다.

"작년 말 제약·바이오 시총은 2%가 채 안 됐다. 그런데 최근 그 비중이 6%까지 높아졌다. 다른 업종 전망은 다 어두운데, 이곳에서만 성장이 기대되고 전망도 밝다면서 큰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새로운 것을 계속 보여준다. 그러니 사람들은 IT와 자동차를 팔고 제약·바이오를 사게 된다. 돈이 한꺼번에 쏠리게 되니 글로벌 시장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시장이 빠져도 오르고 시장이 오르면 더 무섭게 오르니, 아예 제약·바이오를 리스크 없는 '안전 자산'으로까지 여기게 된 것이다."

―버블 붕괴는 시작됐나.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가치에 비해 싼 주식을 담고 기다리는 가치 투자자들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제약이나 바이오, 화장품 같은 특정 업종만 올랐기 때문이다. IT나 자동차와 같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수출산업 성장성은 둔화하고 있다 보니 이 주식들의 성장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하지만 이 업종들에 속한 대다수 기업은 미래 가치가 지나치게 과장되면서 고평가되었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주식을 샀고, 다시 아무 생각 없이 던지고 있다. 비합리적으로 부풀어 올랐던 거품이 스스로 터져서 꺼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거품이 잔뜩 끼었던 주식만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거의 모든 주식이 무차별적으로 가격이 빠지게 된다. 이때 좋은 기업을 싸게 사는 가치 투자자들은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어떤 종목을 사는가.

"절대적인 기준에서 가격이 싸면서 큰 변화가 예상되는 기업을 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향후 지배구조가 변화될 예정이거나 혹은 회사 실적의 극적인 개선이 예상되는 회사들이다. 이때 가격은 다른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라 절대적인 가격이 싸야 한다. 물론 가격이 싸면서 물건이 좋은 경우는 흔치 않다. 귀한 투자 기회를 고르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부풀어 오를 땐 자연스럽게 현금이 늘어난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지면 자동으로 주식 수가 늘어나게 된다. 제약·바이오 하나 없이 펀드를 운용하는 것이 스스로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최근 급락장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피했던 것이다. 절대적으로 싼 주식을 사 두면 시장이 오를 때 크게 오르진 못해도 적어도 폭락장에서 치명적인 손해는 보지 않는다. 펀드에선 주식을 100% 보유하지 않으며,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현금 비중을 최대한 늘린 채 독하게 버틴다.대다수 펀드매니저는 주식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섰을 때 수혜를 입지 못할까 봐 주식 비중을 크게 줄이지 못한다."

―어떤 투자자에게 알맞나.

"현재 우리나라는 딱 2가지 극단적인 유형의 투자자만 존재한다. 무위험 자산 투자자와 위험 자산 투자자가 그것이다. 무위험 자산 투자자는 원금이 보장되니 편안하지만, 초저금리로 수익이 너무 쪼그라들어 불만이다. 위험 자산 투자자는 단기 고수익은 고맙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변동성이 불만이다. '좋은생각펀드'는 그 중간에 서 있는 투자자들을 위한 상품이다. 일반인들도 편안하게 투자할 수 있는 대중적인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 제약·바이오를 담은 펀드는 단시간에 고수익을 내서 일견 좋아 보이겠지만 대중적인 상품이 되긴 어렵다. 연 10%씩만 불어나도 노후에 워런 버핏만큼은 아니겠지만 20년쯤 지나면 원금의 7~8배는 만들 수 있다. 물론 요즘처럼 시장이 부풀어 올랐을 땐 종목 하나 잘 찍으면 하루에도 10%는 쉽게 벌 수 있으니 1년에 10% 수익을 내겠다는 말이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마케팅에 애쓰지 않고 있고 규모도 80억원 정도로 작다. 하지만 이런 철학을 가진 펀드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꾸준히 늘어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