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어때, 다녀가.’ 언제부터인가 눈의 도시 홋카이도의 바람이 내 귀에 대고 속살거린다. 다른 해보다 빨리 온 뜨거운 여름이다. '유월 말부터 장마가 온다고 하는데 홋카이도에 가겠다고? 왜? 홋카이도는 겨울이 제맛이야 이 뜨거운 여름에 홋카이도에 가서 무얼 하려고?‘ 모인 친구들 눈이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들의 생각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홋카이도 하면 뭐니뭐니해도 눈 아닌가. 눈이 내렸다 하면 보통 한 시간에 1m의 눈이 쌓인다는 눈의 도시이니 우리 모두 홋카이도 하면 눈부터 떠올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불멸의 사랑’이나 장근석, 윤아 주연의 드라마 ‘사랑비’의 배경도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철의 아름다운 배경의 홋카이도였다.
눈부신 설원을 배경으로 여주인공이 “오겡키데스카(おげんきですか: 잘 지내시나요)”라고 외치던 장면이 인상 깊었던 영화 ‘러브레터’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 ‘러브레터’는 일본 영화이다. 사랑했던 연인이 죽은 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가 연인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낸 후 답장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일본 영화다.
그곳, 홋카이도에 왜 가느냐는 지인의 이야기에 난 한술 더 떠 버렸다. ‘나 맥주 마시러 갈 거야’라는 소리에 둘러앉았던 지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너 술 못 마시잖아‘ 일순간 그들의 머릿속엔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을 거다. 그 표정이 너무 재밌어서 한마디 더 늘어놓는다. ’여름에는 역시 맥주잖아!‘
뭐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홋카이도의 삿포로 하면 맥주가 유명하단다. 내가 홋카이도에 간다니까 아는 분이 그곳에 가면 한정판 맥주인 '삿포로 클래식'을 꼭 마셔보라고 권한다. 맥주 마니아들이야 여름이고 겨울이고 가리지 않고 맥주를 마시겠지만 나같이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겐 한여름에야 어쩌다 한두 번 마시는 게 맥주다. 그러니 이왕 여름에 가는 홋카이도라면 ‘삿포로 클래식’을 마시고 오라는 거다.
일본은 맥주 산업이 매우 발달한 나라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어디에 가도 다 똑같은 맥주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다른 맛의 그 지역만의 맥주가 있단다. 지역 맥주는 다른 지역에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결코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즉 그 지방에서만 마실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홋카이도 맥주 맛이 아주 괜찮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맛 때문이란다. 홋카이도 물을 마셔보면 이게 물인지 설탕물인지 모를 정도로 맛있다고 한다. 그 물로 맥주를 만들었으니 최상의 맥주가 탄생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한 모금 마시면 그 맛의 조화에 감탄하게 된다고 하니 참 궁금하다.
시인 이병률이 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읽었던 적이 있다. 지구의 여기저기 팔십여 개국을 바람 따라 떠돌며 썼던 에세이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이다. 그 많은 나라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꼽던 곳이 홋카이도의 삿포로다. 시인은 홋카이도의 삿포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삿포로 보러 가실래요?’ 라고 묻는 건 곧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고백이란다.
분명히 그 책을 읽었던 그때부터 일 거다. 언젠가는 홋카이도에 한번 가야겠다고 겨울이면 어떻고 여름이면 어떠냐고. 지금이 홋카이도의 삿포로는 봄. 라벤더의 계절일 것이다. 라벤더의 향기 속에 스며들면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삿포로에 왔어요. 당신을 찾아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떠나려는 것이다. 누가 왜, 떠나느냐고 묻는다면' '지금 바람 부니까, 지금 아니면 갈 수 없을지 모를 테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