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品格이냐… 소박한 美感이냐

올여름엔 고미술이다. 국내 대표 사립 박물관인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림박물관이 야심 차게 특별전을 마련했다. 리움에선 국내외에서 끌어모은 최상급 명품을 통해 한국 미술의 세밀한 아름다움을, 호림에선 몸체가 납작한 조선시대 편병(扁甁)을 둘러보며 질박한 미감을 엿볼 수 있다.

◇리움: 극도로 세밀해서 고귀한

지금 한남동에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명품이 총집결해 있다. 리움에서 열리는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 미술의 품격'전이다. 금속공예, 나전, 회화, 불교 미술 등에서 국보 21점, 보물 26점 등 140여 점이 나왔다. 국내외 소장처 40여 곳에서 모은 명품들이다. 12세기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고려) 나전의 솜씨는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고 감탄한 데에서 제목을 따왔다.

고려청자 중 화려하기로 이름난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 주자'(국보 133호)로 전시의 문이 열린다. 표주박 모양의 몸체 위에 양각·음각·퇴화(堆花)·진사(辰砂) 등 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했다. 잘록한 목 부분을 들여다보면 작은 연꽃 봉오리를 끌어안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자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옆에는 독일 함부르크 미술공예박물관에서 빌려온 '표형 주자'가 나란히 전시됐다. 함부르크 소장품 주둥이가 반 이상 날아가고 뚜껑이 없어졌을 뿐 두 작품은 형태와 소재, 장식 기법이 똑같다. 조지윤 책임 연구원은 "그동안 소박함, 무기교의 기교 등이 한국 미술을 통칭하는 미의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우리 미술의 큰 줄기는 '공교(工巧)'와 같은 세밀함이었다. 한국 미술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했다.

한 점 한 점이 명불허전이다. 청동기시대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의 기하학 무늬는 현대의 정밀 기계로도 재현하기 힘들 정도로 치밀하고, 세필(細筆)로 완성한 고려 사경은 원나라에서 우리 장인들을 요청할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자랑했다. 백제 정교미의 극치인 금동대향로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고(27일까지), 해외에 있는 한국 도자기 중 가장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미국 브루클린미술관)도 고국에 왔다.

섬세한 선과 문양으로 극찬받는 고려 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일본 조쿄지) '아미타여래·지장보살도'(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원각경 변상도'(보스턴미술관), 서울 성북구 흥천사(興天寺) 극락보전에 봉안돼 있던 금동 천수관음보살 좌상까지 볼 수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특별 공간에 따로 마련된 고려 나전. 전 세계에 17점만 남아 있는 고려 나전 중 8점을 영국·미국·네덜란드·일본에서 빌려 왔다. 특히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꽃잎 6개 모양의 합(盒)을 놓치지 마시길. 한 뼘도 안 되는 크기(지름 11.5㎝, 높이 4.4㎝)에 어찌나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넣었는지 입이 절로 벌어진다. 국화를 중심으로 금속 선을 넝쿨 삼아 휘돌아가는 무늬, 대모(바다거북 등판)를 갈아 넣어 붉은빛·노란빛·주황빛이 환상적으로 감도는 빛깔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정도 명품을 한자리에 모은 리움의 공력에 새삼 감탄하게 되지만 유물을 그저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전시 구성은 아쉽다. 별다른 스토리텔링이나 완급 조절 없이 제작 기법에 따라 '문양' '형태' '묘사'로 나뉘어 구성했다. 9월 13일까지. (02)2014-6901

◇호림: 납작하고 개성 있는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이 서울 강남 신사분관에서 열고 있는 '선과 면의 만남, 편병'전은 상대적으로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 몸체가 납작한 도자기 형태인 편병만 선별해서 70여점을 선보인다. 편병은 조선시대 초기에 새롭게 나타난 기형이다.

분청사기, 백자, 흑자(黑磁) 등 다양한 편병을 한자리에 모았다. 15세기 작품인 '분청사기 박지연어문 편병'(국보 179호)은 분청사기 편병을 대표하는 작품. 풍만한 몸통에 활짝 핀 연꽃과 그 사이를 노니는 물고기를 새겼다. 당당한 형태와 호방하게 표현한 회화식 문양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활기찬 선으로 물고기 한 마리를 쓱쓱 그린 '분청사기 조화어문 편병'은 좀 더 파격적이다. 이원광 학예연구실장은 "이런 자유로운 기법의 편병은 주로 전라도 지역 가마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백자 편병은 분청사기와는 달리 단정하고 규격화돼 있다. 주로 경기도 광주의 관요(官窯)에서 생산한 것으로 왕실이나 관청에서 주로 써 형식적으로 엄격하다. 검은빛이 나는 흑자 편병은 그릇 표면에 흑갈색을 띠는 유약을 입힌 것. 단조로워 보이지만 개성이 넘친다. 10월 31일까지. (02)541-3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