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제조사들, 害惡 더는 못 숨겨… 한국 건보공단의 소송도 승산 있다"

"지난달 캐나다 퀘벡주에서도 3개 담배회사에 156억 캐나다달러(약 13조8000억원)를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났습니다. 한국의 담배 소송도 승산 있다고 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최하는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의대 스탠튼 글란츠(69·사진) 교수는 공단이 지난해 4월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으로 인한 폐암 치료비 537억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판은 지금까지 5차 변론을 마쳤다.

글란츠 교수는 "담배 소송의 본질은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 그리고 담배회사의 고의적 과실이나 위법성 입증일 것"이라며 "이미 1970년대부터 담배회사들은 '무리한 인과관계 증명'을 요구하며 방패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결핵균이 결핵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요. 하지만 결핵균에 노출된 모든 사람이 100% 결핵에 걸리지는 않아요. 이처럼 의학엔 100%가 없는데, 100% 담배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증명하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글란츠 교수는 간접흡연의 폐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담배 규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1995년, 세계 최초로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담배회사 내부 비밀 문건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논문이 가능했던 건,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금연 운동가로 이름이 높았던 그에게 영화 같은 사건이 일어난 덕이었다. 1994년 5월 어느날, 그의 사무실로 1만 페이지에 이르는 서류 박스가 배달됐다. 담배회사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BW)을 대리하던 로펌의 한 비서가 비밀 문건을 복사해 넘긴 것이다. 문건을 돌려달라는 BW의 소송도 물리치고 그는 UCSF '담배 문건 도서관'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8200만쪽이 넘는 자료를 수집했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판판이 담배회사에 밀리던 금연운동과 담배 소송의 흐름을 돌려놓은 기념비적 사건이다.

그는 "이 문건들을 통해 담배회사의 최고 임원, 변호사, 홍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철저히 계획한, 거대한 홍보전(弘報戰)에 우리가 완전히 속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담배회사들이 이미 니코틴의 중독성이나 흡연의 해악을 확실히 알고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흡연의 영향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비 지원의 대가는 '비밀 유지'나 '담배회사를 위해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것'이었다고 글란츠 교수는 말했다. 흡연의 해악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대중을 기만하는 고도의 조직적 행위라는 설명이다.

글란츠 교수는 "담배와의 전쟁을 치르는 덕분에 중년의 위기 같은 건 겪을 틈이 없었다"며 웃었다. "나이 들면서 친구들이 '내 인생은 뭔가'라며 고민할 때, 나는 그래도 '병원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던 사회를 이만큼 바꿔 놓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