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내리깐 경계의 눈빛이 매섭다. 바닥을 쓰는 빗질에서 서릿발이 인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구부정한 허리에서 종교인의 인자함보다는 돌아서며 뿌리치는 매서움이 뿜어져 나온다. 말이야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분명 빨리 나가라는 몸짓 언어가 내 몸에 닿아 한기가 으스스 느껴진다.
하긴 남의 나라에 와서 그들이 가장 신성시한다는 신사에 무엄하게 들어와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이들이 반가울 리 없을 건 뻔하다. 거기다 그들의 신이 모셔져 있는 코앞에서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카메라를 눌러대는 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라도 아마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 나가라고 소리 질렀을 것이다.
여기는 홋카이도 신궁(神宮) 앞이다. 바람의 길을 따라 달리다 걷다가 멈춘 곳이다. 고즈넉한 것이 우리의 절 분위기와 비슷하다. 한 번쯤은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무엇이 그들 일본인을 이리로 끌어들이는지, 무엇이 우리를 그리도 혹독한 시련을 주었는지 알고 싶었다. 우리를 돌아보니 우리는 신궁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알지 못했고 분통만 터트렸다.
일본에서 신을 모시는 곳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신궁(神宮)과 신사(神社)이다. 일본의 신궁(神宮)은 일본의 천황이나 황실 조상신을 모시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단군을 모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신을 앞세워 그들은 전 세계를 향해 침략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주변국 침략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신사(神社)라 부른다.
일본 총리 아베가 참배하여 말썽이 된 곳은 야스쿠니 신사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전범들을 신으로 모셔놓고 그들을 참배한 탓에 많은 나라가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슬픔이 밀려온다. 분노에 차있어야 하는데 그 신들을 앞세워 우리에게 위해를 가했던 자들 앞에서 슬퍼지는 이유는 뭘까?
일제 치하 삼십육 년을 우리는 늘 일본에 사과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돌아서서 못 들은 체 먼 산만 쳐다보고 섰다. 그들의 등 뒤에서 시시때때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통을 터트리고 험한 말을 퍼붓지만, 그들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우리가 항상 일본에 이겨야 한다고 이를 악무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는 다 져도 용서가 되지만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게 우리 사이엔 하나의 묵계(黙契)다. 다시는 일본에 당하고 싶지 않다는 DNA라도 심겨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몇십 년을 흘러 왔다. 과연 일본과 우리나라의 감정의 골이 일본과 우리나라 두 나라만의 문제일까?
언제 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한·일간 대학생 토론이 열렸었다. 주제는 ‘왜 일본은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가’였다. 그 토론을 방송으로 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아직도 우린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대학생들의 요지는 한마디로 ‘너희 때문에 힘들었다’이다.
어느 부모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알려 주겠는가. 그러니 그들은 그런 일에 대해선 ‘들은 바도 없고 본 적도 없으니 잘 모른다’였다. 모른다는 학생들에게 증거자료 하나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 말해봤자 먹히겠는가. 적어도 그런 자리에 나가자면 근현대사를 배우지 않은 일본 학생들에게 꼼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자료를 들이밀어야 했다. 일본과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토론을 끌어가야 했다.
미국의 묵인하에 비밀리에 진행되어 731 부대원 전원이 전범도 되지 않았음은 이젠 비밀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도 말살해버린 731부대. 죽은 사람은 야스쿠니 신사에 묻혀 신이 되었고 산 사람은 입 다물고 편안히 잘 살다가 제명을 다하고 이 세상을 떴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부분은 이게 아닐까 싶지만, 세상사가 어디 내 마음대로 돌아가겠는가. 그러니 적어도 대학생 토론에서의 이슈는 인간의 존엄성 말살로 끌고 가야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로 만들어 꼼짝없이 사과하게 하여야 했다.
이 홋카이도 신궁(神宮) 앞에 서서 슬프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의 욕심으로 신 앞에서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졌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지 비가 내린다. 나뭇가지 끝에서 바람이 떠나지 못하는 것도 내 마음을 아는 탓일 게다. 홋카이도 신궁(神宮)을 돌아서서 걷는 등 뒤로 한기가 따라온다. 허리를 굽히고 마당을 쓰는 그 사람의 매서운 눈초리가 따라 오는 탓일 게다. 매섭게 경계의 신호음을 보낸다는 것은 지은 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