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아들·딸에게 조국을 선사했다"

탈북자 출신인 강순교(84·사진) 할머니가 최근 자서전 '어머니의 이름으로 절망의 국경을 넘다'(행복출판사)를 펴냈다. 80대 고령의 탈북자가 남한에서 자서전을 낸 것은 처음이다. 경북 봉화군 법전리 태생인 강 할머니는 남한에서 14년의 유년기를 보냈고, 젊은 시절 12년은 만주에서 보냈다. 이후 40여년을 북한에서 지내다가 말년에 탈북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 할머니는 "연어가 자기가 살던 바다에서 벗어나 힘겹게 물살을 거슬러 처음 태어난 강에서 새끼를 낳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어렵게 고향에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자서전에는 그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가 담겼다.

2006년 75세 나이로 한국에 입국한 강 할머니는 자신의 신변보호를 담당한 이천경찰서 보안계 김순기 경위에게 자신이 살아온 얘기가 너무 기구해 책으로 펴내고 싶다고 했고, 김 경위와 이천보안협력위원회의 도움으로 이번에 자서전을 출간하게 됐다.

봉화에서 살던 소녀 강순교는 14세 때인 1944년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부모와 만주로 갔다. 1945년 해방은 됐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만주에서 지내다가 중공군 팔로군에 징집돼 국민당과 공산당 간 내전 기간 중 간호병으로 복무했다. 6·25전쟁 때는 중국 지원군으로 북한에 파견돼 중공군과 북한군은 물론 포로로 잡힌 한국군까지 치료했다고 한다. 1954년 중국군에서 제대한 그는 중국에서 남한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서른 살 무렵인 1962년 부모를 모시고 귀향하려 했지만 한·중 간 외교관계가 없어 불가능했다. 그래서 통일될 때까지 일단 북한에서 살기로 하고 원산에 정착했다. 그는 간호사로 일했지만 경남 통영 출신인 남편은 출신성분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다. 자녀들도 공부를 잘했지만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란 이유로 대학에 가지 못하고 심한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1970년대에 병사했다.

그는 매달 북한돈 60원과 600g의 식량을 받았지만 나머지 가족은 제대로 배급받지 못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매일 산을 뒤지면서 시호·천궁·감초·백출·황련 같은 약초를 캐다 팔아 연명했어요. 그나마 배급도 1986년 원산 대홍수 이후 점점 줄더니 1994년 완전 중단됐어요."

그는 '중국에 가면 개·돼지도 이밥을 먹는다'는 소문에 국경을 넘어 탈북했다. 하지만 2002년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교화소에 있을 때 둘째 아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화소에서 나온 뒤 막내딸을 데리고 다시 탈북했다. 현재는 2남 3녀 가운데 북에서 세상을 뜬 둘째 아들을 제외한 1남 3녀가 모두 한국에 있다. 강 할머니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을 위해 목숨 걸고 몇 번이나 국경을 넘나들었고, 마침내 아들·딸에게 '조국'을 선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자신을 친부모처럼 보살펴준 김순기 경위를 양아들로 삼았다. 김 경위는 "이 책은 북한이탈주민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와 남한 국민이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옳은지에 대한 메시지를 다 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