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29 16:14

10년산으로 마실까? 17년산으로 마실까? 닛카 위스키 시음장에서 난 지금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반짝거리는 유리컵에 컵에 시음용 위스키가 쪼르르 담겨 있는 테이블을 한참이나 왔다 갔다 한다. 색깔이야 그게 그거 같으니, 냄새를 맡아 봐? 내가 킁킁대며 맡아 본다고 술에 대해 알 길도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누가 보면 술 잘하는 사람이 망설이는 모양새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술, 이왕이면 더 맛있는 걸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위스키 공부라도 좀 하고 올 걸 후회가 밀려든다. 그래 이왕이면 오래된 위스키를 마시자. 오래 두어 숙성시키는 이유는 분명 더 맛있으니 그리 할 거야.

[시니어 에세이] 명주(名酒) '닛카 위스키'에 취하다

17년산 위스키 한잔에 얼음 세 개를 동동 띄워 들고 돌아선다. 궁금하다. 어떤 맛일까? 위스키라면 그 옛날 내가 처녀라고 불리던 시절 한두 잔 마셔보곤 처음이다. 사실 마실 줄도 모르면서 괜스레 폼 한 번 잡느라 마셨던 기억이 전부다. 한 모금 천천히 입으로 흘려 넣는다. 갑자기 목이 타들어 간다. 타는 목을 잡다가 말고 놀라서 아닌 척 용을 쓰느라 고개를 돌리는데 창밖으로 닛카 위스키 공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빨간 지붕이 조경이 잘 된 숲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근대적 건물들이 조화롭게 서 있다. 차분하다. 마치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1934년 세울 때 당시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아직도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고 석탄을 때서 증류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고수하고 있단다.

세계의 5대 위스키라면 영국(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 미국의 버번위스키, 캐나다의 캐나디안 위스키,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위스키가 꼽히고 마지막 한 나라가 바로 아시아의 일본의 홋카이도 산 닛카 위스키란다. 정말 뜻밖이다. 스카치라든가 버번 등은 들어 본 적은 있어도 닛카 위스키는 처음 들어보았다.

물론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좀 뜻밖이었다. 홋카이도의 요이치와 센다이의 미야기 두 곳의 증류소에서 오랫동안 숙성을 거듭해 복잡한 풍미를 내는 것이 특징이며 2013년 최고의 퓨어몰트로 뽑히기도 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닛카 위스키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수입금지 탓이다.

공장을 견학하다가 자료실에서 멋진 1900년대의 신사 한 분의 사진을 보았다. 지금 눈으로 보아도 참 멋지고 잘 생긴 신사가 1900년대의 사진 속 풍경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바로 이 위스키 공장의 창업자 다케쓰루 마사타카였다. 그 옆에 그의 아름다운 부인인 스코틀랜드 양조장집 딸 리타가 서양의 전형적인 귀부인 풍모를 하고 나를 맞는다. 곱슬머리에 어깨에는 여우 털로 만든 숄을 두르고 우아하게 앉아있다. 그 시절에 지극히 보수적이었을 일본인이 국제결혼이라니….

[시니어 에세이] 명주(名酒) '닛카 위스키'에 취하다

이 국제결혼을 한 부부의 사진 한 장으로 다케쓰루 마사타카란 창업자의 위스키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위스키 제조법을 배우려고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간 그에게 양조장 주인이 호락호락 위스키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다. 결국, 그는 양조장 집 딸 리타와 결혼을 하고 위스키 제조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돌아와 스코틀랜드와 자연환경이 가장 흡사한 홋카이도에 자리 잡아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란다.

그때 그 창업자의 정신을 그대로 자식들이 이어받아 그 제조방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만들어내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낸 그들이 부럽다. 다른 것을 기웃대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오는 그 집 자식들이 부럽다. 뭐니 뭐니 해도 중소기업을 박대하지 않고 키워내는 그 나라의 풍토가 부럽다. 소위 메이커만 물건이라고 하지 않고 아껴주고 키워 준 그 나라의 국민정신이 부럽다.

부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닛카 위스키 시음장 문을 나선다. 다케쓰루 마사타카와 리타가 살았던 리타하우스가 아까보다 더 환하게 빛나 보인다. 날씨가 흐렸음에도 그 집이 환해 보이는 건 무슨 일일까? 그 시대의 일본식 집이 다 그러하듯 창문이 유난히 많은 탓일까? 아니면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다웠다는 리타가 한 말 ‘나는 당신의 꿈을, 함께 살며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다는 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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