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31 10:18

[시니어 에세이] 숲속에서…

미국에 온 지 오늘이 보름째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디를 가든지 걸을 만한 곳을 찾아본다. 서울에서는 집 가까이에 있는 수락산 길을, 화성에서는 서봉산 길을, 일산에서는 호수공원과 고봉산 길을, 용인에서는 법화산 길을, 3년 전 미국에 왔을 땐 버지니아 애팔래치아산맥을 구간 구간 걸었고, 요즘에는 트레일 코스를 즐겨 걷는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새롭게 감탄한다. 지금 걷는 길은 마치 강원도 정선 오지길 깊은 산속에나 있던 원시림 같은 숲속을 걷는 느낌이다.

이곳이 그렇다.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들, 아름드리 굵은 나무, 이들 사이로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잡목들, 여기저기 고목이 되어 자연스레 쓰러져 뻗어 엉켜있는 죽은 나무들, 숲속을 흐르고 있는 골짜기의 시냇물,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거의 매일 이 트레일 코스를 걷고 있다.

낮이라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산새들과 청솔모들만 지나가지만 둘러보면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높고 맑은 하늘과 하얀 구름,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의 나뭇잎들, 그리고 그 사이로 오가며 나뭇잎들을 흔들어 주는 고운 바람, 숲속 깊은 곳이지만 초여름인지라 이름 모를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고,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꾸룩꾸룩~ 호르륵~ 짹짹~, 삐약~, 뀌익뀌익~ 바로 옆에 청설모가 지나가는 이방인인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얼른 나무를 타오른다.

시냇물 곁에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니 냇물도 졸졸 소리를 내고, 그 안에 또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바삐 움직인다. 주위를 돌아보면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고 틈만 있으면 이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중에는 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벌, 나비, 모기, 파리 온갖 곤충들이 날아다닌다. 특히 모기는 땀에 젖어있는 나를 좋아한다. 난 반갑지 않은데…. 

어젯밤 비가 와서인지 오늘 숲은 습기를 머금은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골짜기 냇물은 물이 불어나 벌건 황토색으로 변해 흐르고 있다. 숲이 잔뜩 습기를 머금고 있으니 햇빛에 피부가 건조해질 리 없고 수분크림 안 발라도 되겠다는 생뚱맞은 생각도 해본다.

까마득히 길이 이어지는데 길 가운데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여기 짐승들은 사람이 가까이 갈 때까지 피하지 않는다. 노루의 얼굴이 순해 보인다. 피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 하다. 노루와 나는 서로가 난감해 한다. "야~ 네가 먼저 가" 꿈쩍도 안 한다. 노루도 내가 먼저 가길 바라는 모양이지만 난 무서워서 꼼짝을 못한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 노루가 내게 길을 내줬다. 숲이 무성하니 동물들도 많이 살고 있겠지. 이런 숲속 친구들과 나는 이 시간을, 이 공간을 함께 한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