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국서 온다, 진실이 담긴 52편의 순간

"극영화에선 감독이 신(神)이지만, 다큐멘터리에선 신이 감독이다."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말처럼, 다큐멘터리에는 픽션이 담을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세계 곳곳에서 신이 준 선물들을 한데 볼 수 있는 영화제가 열린다. 올해 12회를 맞는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등에서 열린다. 32개국에서 온 5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개막작 '스톡홀름씨의 좋은 날'은 유럽연합에 맞서 자연친화적인 재배 방식을 지키려는 덴마크 농부 닐스 스톡홀름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행정당국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배제하고 전통 농법을 고집하는 스톡홀름의 농장이 유럽연합 공통의 농업 규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압박한다. 피에 암보 감독은 1년간 그의 농장에 머물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농부의 삶과 그 삶이 빚어낸 기적적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쟁 부문에서 관심을 끄는 작품은 다큐멘터리계의 스타로 떠오른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의 '티타임'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60여 년간 매달 차 마시는 모임을 가진 5명의 노부인이 등장한다. 이들이 차를 마시며 나누는 환담이 내용의 전부이지만, 그 안엔 300년분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그린란드 독립 운동을 촉발시킨 록밴드 '수메'를 다룬 '수메-혁명의 사운드', 최근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그리스의 혼란상을 길 위의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관찰한 '아고라:민주주의에서 시장으로' 등이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아이와 교육, 아시아, 여성 등 8개의 주제별로 나뉜 비경쟁 부문에선 한국의 박혁지 감독이 찍은 '춘희막이'가 눈길을 끈다. 본처와 후처라는 관계로 한집에서 살아온 최막이 할머니와 김춘희 할머니가 나온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뒤 37년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두 사람의 관계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감독의 시선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여성주의적 변주로도 보인다. 암 진단을 받은 한 살배기 아들을 위해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의 이야기를 담은 '지금이라는 이름의 선물',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의 불법 사찰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인터뷰한 '시티즌포', 세계 힙합음악 경연대회에 출전한 90대 할아버지들의 좌충우돌을 따라간 '힙합어르신, 라스베이거스를 가다' 등의 다큐도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수작들이다.

영화제 기간에 EBS 1TV를 통해서도 출품작들이 방송된다. 상영 및 방송 편성표는 EIDF 홈페이지( www.eidf.co.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