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더운 여름날이면 망설이게 되는 오후의 도보! 더구나 장마철엔 조금만 움직여도 끈적거리는 느낌으로 숲길을 걸어간다는 생각은 자꾸만 망설이는 마음을 만들곤 한다. 즐겁게 걷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스스로의 최면 유도는 땀을 흠뻑 흘린 후에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다.
워낙 지명이나 위치 등 과학적이나 논리적 두뇌를 요구하는 일은 스스로 알아서 머리가 먼저 회피를 하는 성향인지라 위치 지명에는 관심이 없는데 안내판 위로 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북한산 둘레길 16코스이다. 다시 15코스로 거꾸로 걸어가고 있었다. 생각 없이 걸어가는 내게는 기록상의 숫자로서만 존재하여도 푯말에 남겨지는 숫자는 산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꽤 큰 의미가 되어주는 방향표시의 역할을 한다.
온몸이 끈적거리고 땀은 흐르지만 걷다 만나는 바람의 상쾌함이 잠시 장마철 습도를 잊게 한다. 가끔 습도 높은 길 위로 바람이 살랑거린다. 밤 사이 내린 비로 바위도 물기를 머금어 숲은 가득히 젖어 있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함께 느낌을 공유하고 살아있음의 의미를 실감하면서 한 번씩 던지는 농담이 젖은 산을 웃음으로 메아리를 만들곤 한다.
가다가 만나는 작은 개울가에서 족욕 시간. 잠시의 족욕이 발의 시원함을 유지하면서 걸어가는 북한산 자락의 도보는 여름철 우기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열치열의 방법으로 선택한 순두부집에서의 맥주 한 잔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땀 흘린 후에 마시는 시원함을 기대하였던 그 순간!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도 적절한 시간으로서만 가능한 것임을….
차가운 냉방의 실내기온이 젖은 옷에서 온기를 빼앗아가고 그 후의 맥주는 갈증을 잠재우는 상쾌함이 아닌 거부하고 싶은 유해음식으로서만 그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적정시간의 유효기간이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