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중장비… 新중년 구직자 60% 자격증 취득

대기업 협력사에서 27년간 사무직으로 근무하다 2013년 명예퇴직한 이모(55)씨는 요즘 낮에는 요리 학원, 밤에는 컴퓨터 학원에 다닌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과 워드프로세서,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다. 한 달에 50만원 가까운 돈이 학원비로 나가지만, 이씨는 "인생 2모작을 위한 투자"라고 했다. 그는 "컴퓨터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지만 공신력 있는 자격증이 취업에 도움 될 것 같아서 다시 공부 중"이라고 했다. 조리사 자격증은 사무직 재취업이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용'이라고 했다.

퇴직 후 '제2의 직장'을 찾는 50·60대 실버 구직자들 사이에 자격증 따기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을 때 경력을 바탕으로 헤드헌팅 회사나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재취업을 시도하던 장년층 재취업 시장에서 '스펙' 쌓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취업 포털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올 상반기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구직자들의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구직자 2000여명 가운데 자격증을 하나라도 소지한 사람은 60.2%에 달했다. 50대 이상 구직자 9명 중 1명(11%)은 자격증을 2개 이상 가지고 있었고, 10개 이상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50대 이상 구직자도 4명 있었다.

실제 각종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는 50대는 점점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기술자격증 필기시험을 접수시킨 50대 이상은 16만1492명으로, 2010년(10만6537명)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자격증 취득자 역시 같은 기간 2만8193명에서 3만9275명으로 크게 늘었다. 20대 응시자는 2010년 100만2899명에서 2014년 102만2747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50대 이상 구직자들은 한식조리기능사 등 요리 자격증이나 자동차정비기능사 등 중장비 관련 기능사 자격증에 주로 응시했다. 또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활용능력 등 20대 구직자들의 '스펙' 쌓기용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컴퓨터활용능력 2급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 중 50대 이상은 734명이었다.

취업 과정에서 '자기 홍보'가 중요해지면서 재취업을 위해 '이력서·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배우는 50대도 늘고 있다. 물류업체에 근무하다 지난해 퇴직한 윤모(56)씨는 최근 취업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머리 염색을 하고 젊은이 취향의 옷을 입고 이력서에 쓸 사진을 다시 찍었다. 중장년층의 재취업 활동이 젊은이 못지않게 활발해지면서 경제 단체에선 무료 이력서 클리닉도 운영하고 있다. 중장년 구직자들은 단순히 본인의 경력들로 1~2장 분량의 이력서를 다 채워버려, 정작 업무 성과를 효과적으로 홍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관계자는 "중장년 구직자들을 위해 취업 컨설턴트들이 교대로 상담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맞물려 중장년층 사이에 구직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벼룩시장구인구직 관계자는 "취업난과 고용의 불안정성이 심해지며 출구 전략을 세우거나 재취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중장년층이 자격증 등 스펙에 몰두하는 것"이라며 "구직 장년층은 젊을 때 경력과 관련성이 큰 자격증에 도전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재취업을 위해 정부나 각종 기관이 시행하는 '재취업 프로그램'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