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8.07 14:12

일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행을 좀 즐기는 터라 내가 다닌 곳을 대략 살펴보아도 마흔 여 개국이 다 된다. 꽤 많은 나라를 다녀왔다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그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늘 ‘일본은 나중에 다리 힘 풀릴 때 갈 거야’라고 여겼다. 그 말 속엔 나도 모르게 심어진 일본을 미워하는 DNA가 작용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냥 싫다. 무슨 집 안에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조상도 없으니 나야 딱히 그럴만한 이유도 사실 없다. 가기 싫었던 이유를 굳이 대라면 우리보다 잘 사는 게 싫고, 우리를 못살게 굴었다는 게 싫고 우리보다 점잖은 게 싫다는 정도를 댈 수 밖에 없다. 물론 어이없는 이유다. 사실 우리보다 잘사는 곳도 다녀왔고 우리보다 한참 뒤떨어진 나라들도 다녔으니 첫 번째 이유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늘 한쪽으로 미루어 놓은 나라가 일본이다.

그 일본이란 나라를 가면서 사실 뚜렷한 어떤 것을 보아야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그냥 지인들이 가자기에 갔을 뿐이다. '맥주 맛이 기가 막힌단다, 라벤더가 피는 언덕의 경치가 정말로 아름답다더라.' 하는 것도 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일본 여자들이 우리나라 남자 탤런트들이나 남자 가수들에게 왜 그리도 끌리는 건지 궁금했다. 사실 우리 눈에야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인물일 뿐이지 않은가.

일본 홋카이도 공항에 내렸을 때부터 유심히 일본 남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왜 그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남자 탤런트나 가수들에게 ‘훅’ 가서 욘사마니 뭐니 하고 열광인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 거리의 일본 남자들이 좀 촌스러웠다는 것밖에는 알 수 없었다. 그 정도야 영락없는 우리나라 시골에 가도 볼 수 있는 그냥 그런 모습인데….

셋째 날, 호텔로 돌아와 TV를 켰다. 일본에 와서도 호텔에서 한 번도 틀지 않았던 TV를 켰다. 한참 우리나라 가요무대 비슷한 프로를 하고 있었다. 멜로디야 우리나라 트로트 느낌 그대로였다. 우리나라 가수들이 일본에 많이 진출하는 이유가 설명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제 얼굴을 하고 있다. 삼십 대는 삼십 대답게, 오십 대는 오십 대답게 주름진 얼굴로 노래를 부른다. 우리나라 ‘가요무대’라면 오십 대 육십 대 가수들이면 일단 얼굴이 빵빵 부풀어 올라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는데….

그래도 가수들인데 싶어 TV를 뚫어져라 들여다보아도 다음 사람도 또 다음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채널로 바꾸어 본다. 요리 프로가 나오고 있다. 요리하는 사람이나 요리를 담당하는 MC도 게스트들도 그냥 우리 주변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차림새 그대로다. 또 다른 채널로 돌려 본다. 그렇게 돌리고 또 돌려도 화면은 그냥 우리들의 일상복 차림에 수수한 화장 그것 뿐이다. 얼굴에 파리가 낙상할 만큼 반짝이지도 윤이 나지도 않는다. 충격적이다.

[시니어 에세이] 스쳐가는 풍경들

그 충격적인 일들이 사실 이 일뿐만이 아니다. 버스에서 이동하는 내내 그들이 사는 집들을 살펴보았다. 정갈하다. 너무 정갈하다 못해 저 집에 사람이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집주변에 군더더기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등에 메었던 란도셀이라 불리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혼자 아니면 둘씩 셋씩 어울려 타박타박 걸어 등교하고 하교했다. 그 언제 적 란도셀인가. 나의 빛바랜 초등학교 입학식 날 찍은 사진에서야 볼 수 있는 란도셀이 일본엔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도심을 빼고 거리엔 가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했는데 가이드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워낙 중소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잘 이루어져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린 가끔 일본을 말할 때 나라는 부자라도 개인은 가난하다 했지만 그리고 그걸 정설로 받아들였지만 그건 전혀 아니었다. 자영업이 적다는 것은 결국 사는데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위스키 공장이나 우유 공장을 돌아보면서 가업을 대대로 물려받으며 한 길을 가는 그들을 발견했고 다 쇠퇴해 가는 손바닥만 한 운하에 이야기를 입히고 그때 그 시절의 건물들을 이용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그들의 힘,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치를 부여하고 높여 나가는 그들의 정신이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절대로 화려하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번영의 길을 가고 있는 일본을 보았다.

처음 간 일본에서 내가 보면 얼마나 보고 내가 들으면 얼마나 들었겠느냐마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저력이 무섭다는 것을…. 우리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부수고 최신식 건물을 올리는 동안, 유행이라고 너도나도 그 유행을 좇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이차대전 당시 군수 공장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 속았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때 그들은 돌아서서 웃고 있다. 뉴스처럼 속였다 치고 속인 사람이 잘못인가, 속은 사람이 잘못인가.

남대문 동대문 주변의 성벽(城壁)은 다 어디 갔는가. 그들이 숨겨야 할 것을 문화유산으로 전 세계에 드러낼 때 우리의 중앙청(조선총독부)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란 부끄러운 것도 포용하고 반성하여 새로운 지표를 세워야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위정자(爲政者)들이 그 옛날 난파되어 도착한 하멜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일본의 위정자(爲政者)들이 난파되어 도착한 포르투갈 인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그 일들이 후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내 말만 옳다고 우겨대는 이 나라의 위정자(爲政者)들이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