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이번엔 '정제마진 쇼크'

올 들어 2분기까지 회복세를 보이던 정유업계가 이번엔 '정제(精製) 마진' 급락으로 다시 실적 악화 우려에 빠져들고 있다.

'정제 마진'은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나프타 등 석유제품을 만들어 얻는 이익을 말하는데 정유회사들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올 5월까지 배럴당 10달러에 육박하던 국내 4개 정유사의 정제 마진은 7월에 7.1달러로 추락했다.〈그래픽 참조〉 동남아·동북아 지역 정제 마진 평균치인 싱가포르의 복합 정제 마진은 7월 말에 4달러대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정유사의 경우 정제 마진 1달러 등락(騰落)에 실적이 500억~800억원 오르내리며, 정제 마진이 5~7달러일 때 '본전'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 유가 하락에다 제품 공급 과잉 겹쳐

올 하반기 들면서 정제 마진이 급락한 것은 먼저 글로벌 정유업체들이 일제히 가동률을 높이며 공급량을 늘린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해 국제 유가 급락으로 가동률을 낮췄던 정유사들이 상반기 정제 마진이 소폭 상승하자 잇달아 증산을 한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과 중동(中東) 국가들이 경유(輕油) 수출에 나서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공급 과잉이 벌어지고 있다. 박영훈 LIG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경유 수출량을 1년 전보다 50% 이상 늘린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반기에는 하루 40만 배럴의 정제 시설을 신규 가동해 정제 마진 하락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협상 타결로 인해 원유 공급이 늘어나는 것도 정제 마진 하락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그리스 사태와 중국 경기(景氣) 후퇴 같은 악재(惡材)가 많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 석유제품 구매자들이 구입 시기를 늦추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3분기 정제 마진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향후 반등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정유 4사, 도입선 다변화와 사업 다각화

국내 정유 4사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위기 경영' 모드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비용 절감 위주의 단기 처방을 넘어 원유 도입선 다변화, 사업 다각화 같은 구조적 대응에 힘을 쏟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페루 가스 수송 법인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작년 말 7조9000억원이던 순(純)차입금을 2분기에 6조3000억원까지 줄였다. 인천석유화학의 공장 부지 내 유휴부지 매각, SK에너지 인천물류센터 일부 부지 매각도 서두르고 있다.

에쓰오일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경유 탈황 시설의 처리량을 10% 늘리는 시설 개조 작업 등에 향후 2년 동안 2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중질유 분해 시설과 복합 석유화학 시설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신규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올 들어 멕시코산(産) 100만 배럴, 북해산 약 500만 배럴, 서아프리카산 230만 배럴, 미국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 30만 배럴을 들여오는 등 원유 도입선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원가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한 푼이라도 싼 원유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도 남미·북해 등에서 새로운 유종(油種)을 싸게 들여와 원가를 최대한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중개 비용 절약을 위해 원유 도입 시 전문 석유중개상을 거치던 방식을 줄이고 직원들의 직접 거래를 늘리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지난해 유류 저장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내년 하반기 상업 생산을 목표로 콘덴세이트(초경질유) 정제 및 혼합자일렌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정부도 규제 중심인 각종 가격 개입 정책을 완화해 정유산업을 측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