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선문에 이어 적멸보궁을 답사해보기로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쉽게 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화장하니 여덟 말이 넘는 사리가 나왔으며 주변 국가들이 이를 8 등분 하여 나누었다가 훗날 아소카 왕에 의해 다시 모여 8만4천 탑이 세워지게 되었으니 적어도 그때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 부처님 진신사리가 어찌어찌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지게 되었으니 이를 모신 절집들을 일컬어 적멸보궁이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진신(眞身)인 사리를 모시고 있으니 불전에는 따로 부처님 형상을 만든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으며, 예불은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이나 상징물을 향하여 올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근래 들어 전국을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적멸보궁이 많이 보인다. 심지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절도 자칭 적멸보궁이다. 천 년 전 고승이 가져와서 모셨다는 고찰(古刹)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러한 역사에 자신이 없으면서도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 등지에서 가져왔다는 설명이니 이를 믿기도 그렇고 안 믿기도 그렇고... 이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고래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직접 봉안하였다는 다섯 절집을 5대 적멸보궁으로 손꼽는 실정이니 이들을 대상으로 하나하나 답사해보기로 한다.
통도사(通度寺)
통도사를 일컫는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5대 적멸보궁이며, 그것도 제1 적멸보궁이라는 자부심이다. 5대 적멸보궁은 통도사 외에는 모두 강원도에 있는데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와 태백산 정암사를 말한다. 이 중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시대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그 밖에도 비슬산 용연사에도 사명대사가 사리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 용연사와 건봉사, 도리사를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한다. 불교도들 간에는 이들 5대 적멸보궁을 모두 찾아보는 순례적 숭배를 뜻깊게 생각하며 가장 신봉하는 기도처로 손꼽기도 한다. 또한, 통도사는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三寶) 중 불보(佛寶) 사찰이다.
법(法)에 해당하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法寶)사찰 해인사나, 승(僧)을 뜻하는 승보(僧寶)사찰 송광사와 함께 삼보(三寶)사찰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중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모셨기에 통도사를 삼보사찰 중 으뜸인 불보종찰(佛寶宗刹)이라 하며 이는 일주문 좌우에 걸린 '불지 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말로 통도사의 품격과 사세(寺勢)를 가늠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이다. 우리나라(조계종)에는 5대 총림으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를 손꼽고 있는데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고 하며 그만큼 규모가 크고 조직과 체계가 정비된 큰 절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를 추가하여 8대 총림이라고 한다.
통도사는 이처럼 대단한 절집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통도사 IC에서 갈라져 통도사 매표소로 나가게 되는데 이 명칭 때문에 기독교계통의 일부 인사들이 시비를 걸기도 하니 그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나와 통도사 영역으로 접어들기 전 시내에도 이미 통도사 어린이집, 유치원, 치매 요양 등 부속시설이 여기저기 눈에 띄니 이미 통도사 타운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가 막상 통도사 경내로 들어서면 속세를 벗어난 듯하지만, 크고 작은 절집들의 숫자와 그 배치에 있어 어지간한 마을보다 커 보이니 처음 찾아온 사람은 도대체 이 많은 전각과 상징물들이 다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정신이 없을 만큼 복잡하고 큰 절집이다. 그래서 본 답사기도 상편, 하편으로 나누어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한다.
통도사 측 설명에 따르면 통도사 가람 형태는 신라 이래의 전통 법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된 산지도 평지도 아닌 구릉 형태로서 탑이 자유롭게 배치된 자유식형식이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上爐殿)과 통도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로전(中爐殿), 그리고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下爐殿)으로 구분하는데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는 12개의 큰 법당이 있으며 영축산 산 내에는 20여 개의 암자들이 들어서 있고 전각의 수는 모두 80여 동에 이른다고 하니 과연 대단한 절집이다.
절집을 들어서기 전에 커다란 산문(山門)을 만나게 되는데 매표소 기능을 겸한다. 대개 큰 절집들을 가보면 사찰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이처럼 커다란 산문을 세우는데 다소 위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곳이 매표소라는 데는 왠지 희화적인 느낌이다. 고즈넉하고 조촐한 산사(山寺)의 입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두 개의 커다란 문과 석당간, 승탑원을 지나니 비로소 일주문이다. 특이한 것은 일주문 앞에 세운 2개의 돌기둥에 쓰인 문구와 일주문의 가운데 기둥 2곳에는 걸린 주련이다. 돌기둥(石柱) 2개에 쓰인 문구는 구하(九河)스님이 쓴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 '방포원정상요청규(方抱圓頂常要淸規)', 즉 '각 성끼리 모여 사니 화목해야 하고, 가사 입고 삭발했으니 규율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통도사 절집의 스님들에게 주는 경구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또한, 일주문의 가운데 기둥 2곳에 걸린 주련은 남쪽 지방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앞서 통도사의 위상을 설명할 때 나온 2가지 표현,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로 통도사의 품격을 나타내는 글이다.
하노전(下爐殿) 구역
이렇게 커다란 문들을 세 개씩이나 지나야 비로소 통도사 경내라고 할 수 있다. 일주문 다음에 만나는 천왕문을 들어서면 하로전 구역이 시작인데 천왕문의 왼쪽으로는 통도사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 신을 모신 가람각이 있고, 그 앞으로는 아침저녁 예불의식에 사용하는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걸어 둔 2층의 범종각과 연이어 만세루가 자리해 있다.
범종각의 오른편에는 서향으로 돌아앉은 극락보전과 이를 마주 보고 있는 약사전, 그사이에 남향한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 앞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있으며, 이외에 영산전 뒤로 응향각과 명월당이, 통도사 종무소와 금당, 은당 그리고 육화당 등의 요사가 자리해 있다.
통도사를 이렇게 상노전, 중노전, 하노전으로 나누어 부르는데 이렇듯 로전이 3개인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우선 하노전부터 둘러보기로 하자.
천왕문은 하로전으로 들어오는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 맞배지붕으로 비교적 간결한 구조이며, 내부는 중앙 칸을 통로로 하고 좌우 측 간에는 목조의 거대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배치하고 있다. 여느 절집의 천왕문과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이나 사천왕 들이 발로 밟고 있는 악귀의 모습이 일부 왜구의 모습이 된다거나 심지어 만주족, 오랑캐들의 모습을 조각해놓기도 한다는데 이곳 통도사 천왕상이 밟고 있는 악귀는 아무리 보아도 조정의 관헌들 모습이다. 관청에서 얼마나 못살게 굴었기에….
천왕문을 들어서면 왼쪽이 만세루(萬歲樓)이다. 하노전을 단일사찰이라고 본다면 사람들은 이 만세루로 들어와 맞은편 영산전을 바라보아야 할 테지만 지금 만세루는 누각 형태가 아니라 지상에 단단히 붙여 지은 단일건물 형태이다. 누각이 아니면서 누(樓)라고 한 것을 보면 초창기 때는 누각 형식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불교용품점이 들어서 있다.
오른쪽, 즉 동쪽에는 극락전이 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불이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협시로 하여 모셔졌는데 사실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전은 사찰의 주불전이 되어야 함(부석사 무량수전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다)에도 이곳 통도사에서는 하노전의 부속불전이다.
이렇게 통도사 절집의 초입과 하노전 부분을 둘러보았다. 그 밖에도 만세루 옆의 범종루와 그 뒤편으로는 가람을 수호하는 가람 신을 모신 가람각이 한 칸 규모로 지어져 있는데 이는 불교신앙이 아니라 민간신앙 대상을 불교화하여 절집 안에 배치한 경우이다. 불교가 토속신앙을 포용한 것이다. 이제 불이문(不二門)을 들어서면 중노전이 되는데 중노전과 상노전은 답사기 [하편]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영취산? 영축산? 통도사가 위치한 곳은 취서산이다. 그러나 통도사를 말할 때는 '영축산 통도사'라고 하는데 혹자는 이를 영취산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올바른 명칭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영축산이다.
영축산은 인도어 '그리타쿠타'를 의역한 한자식 표현이다. 부처가 법화경을 설파한 인도 동북부의 라즈기르 산 정상에 놓인 암봉이 그리타쿠타인데, 우리말로 '독수리 바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한자어로 의역한 것이 '영험할 영(靈)'과 '독수리 취(鷲)'를 합친 '영취산'이고, '영취'의 불교식 발음이 '영축'인 것이다. 즉 영취산이지만 불교식으로는 영축산이라고 부른다.
통도사가 들어선 배산(背山)은 지리 명으로는 취서산이며, 취서(鷲棲)는 정상의 암봉이 독수리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것인데 지난 2001년부터 양산시 요청으로 지명을 영축산으로 통일하여 지금은 지리적 명칭도 영축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