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8.13 11:13

혼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식탁에 차리는 것도 귀찮아 쟁반에 배추김치 보시기와 깻잎 찜, 그리고 멸치볶음 한 접시와 밥 한 공기를 담아 들고 TV 앞에 앉는다. 나 혼자 밥 먹을 때면 언젠가부터 든 습관이다. 쟁반을 내려놓고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익숙한 리듬이 흘러나온다.

아리랑이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아리랑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어느새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리모컨을 든 채로 내 몸속의 한국인 DNA가 저릿저릿 일어나며 자연스럽고 따스한 정감이 듬뿍 묻어나는 노래가 기교도 없고 과장도 없지만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 에세이] 아리랑 하나쯤은…

얼마 전부터 민요를 배워보겠다고 국악 교실에서 민요를 배우고 있다. 퇴직을 하면 하고 싶은 것 중 민요 하나쯤 제대로 부르고 싶었다. 노래라면 음치에 박치인 내가 민요를 제대로 배우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젠가 러시아 여행 때 어쩌다 부르게 된 '아리랑' 때문이다.

어느 해, 러시아에 갔다. 배를 탔는데 러시아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참 그들의 신나는 박자에 흥이 올라있는데 불쑥 한 남자 무희가 손을 내밀었다. 옆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몸치인 내가 엉겁결에 그 남자 무희의 손을 잡고 러시아 춤을 추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가 노래 한 곡 뽑고 들어가라고 박수를 치니 여기저기서 박수는 터져 나왔다.

음치에 박치인 나다. 아는 노래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산토끼’를 부르겠는가. ‘나비야’를 부르겠는가. 얼핏 생각난 것이 아리랑이었다. 그래 그거라면. 그렇게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 시작은 좋았다. 아니 좋았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잘 넘어갔는데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노래는 더 이어져야 하는데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다시 ‘아리랑~~ 아리랑~~~~ ’ 하다 끝을 냈다.

박수는 받았지만 찜찜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는 노래. 아리랑 노래하나 끝까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여행하는 내내 걸렸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밀양 아리랑’이나 ‘도라지 타령’이나 그 어느 민요도 끝까지 알지 못했다. 그때 결심했다. 아무리 내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우리나라 민요 하나쯤은 익혀야겠다고.

퇴직하고 집에서 빈둥대던 어느 날, 구청신문에 작은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지현 선생님의 찾아가는 국악교실’. 안 그래도 퇴직하면 민요 한 가락쯤은 제대로 배워야지 했는데 바로 집 앞 강북문화정보센터. 즉 도서관에서 한다니 그것도 공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댔는데. 얼씨구나 하고 달려갔다. 그렇게 시작된 민요 배우기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니 그까짓 민요 배우기는 뭐 그리 어렵겠는가 싶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강원도 아리랑을 배우는데 선생님도 웃고 우리도 웃는다. 어이없어 웃고 민망해서 웃는다. 선생님 노랫가락은 애달프게 간드러지는 여우인데 우린 곰도 그런 곰이 없다. 많이 듣던 가락이라 잘될 줄 알았지만 웬걸 하면 할수록 들어줄 수가 없다. 되지도 않는 노래건만 선생님은 잘한다 잘한다 하다가 본인도 어이없어 웃고 만다. 선생님이 웃으니 우리도 노래하다 말고 와르르 웃는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동요나 민요보다는 가요를 좋아했던 게. 옛사람들은 애환을 노래를 풀어냈는데 우린 그 애환을 가슴에 묻어놓고 글도 노래도 가벼운 것만 찾아다닌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 것을 시대에 뒤졌다고 버리는 동안 남이 우리 것을 찾아 연주하고 있다.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그러니 나부터 우리 노래 '아리랑' 한 곡이라도 제대로 불러보고 싶어 목청껏 선생님을 따라 부른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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