鄕愁 가득한 재즈… 옛 추억에 젖어드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이난영이 부르는 '다방의 푸른 꿈'에는 아득한 기억과 슬픔이 담겨 있다. 사랑이 떠난 뒤에 그 대상을 붙잡고 고통을 견디는 여인의 그리움을 재즈풍의 세련된 노래로 들려준다. '목포의 눈물'의 가수 이난영(1916~1965)은 6·25 전쟁통에 남편 김해송(작곡가)이 납북되면서 유랑극단의 나그네로 굴러떨어진다. 이난영은 딸 숙자와 애자, 오빠(작곡가 이봉룡)의 딸 민자를 묶어 김시스터즈를 결성하고 피나는 조련을 시작한다.

지난 13일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방의 푸른 꿈'(감독 김대현)은 수몰된 지 30년이 지난 청풍호(淸風湖) 앞 가설무대에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풍경까지 덤으로 보여줬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김시스터즈를 중심으로 이난영 음악 가족을 비춘다.

미국 레코드를 되풀이해 들으면서 뜻도 모르고 노래를 암기한 일, 미군 캠프에서 노래하고 돈 대신 위스키를 받은 일, 195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한 일, 점점 큰 무대에 서다 인기 TV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나간 일….

이난영은 김시스터즈를 미국으로 보낼 때 세 가지를 당부했다. 단숨에 성공하려 하지 말고 계단을 하나씩 밟고 갈 것, 성공할수록 더 겸손할 것, 데이트는 하지 말 것. 김시스터즈는 '동양에서 온 마녀들'이라 불리며 196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래도 그들의 노래 '김치 깍두기'에 담겨 있듯이 미국 생활은 외로웠고 고국이 그리웠다. 이 영화는 헝가리에 살고 있는 민자의 회고담을 가장 많이 들려준다. 다뉴브강을 배경으로 민자가 부르는 '목포의 눈물'이 이난영의 옛 영상과 겹쳐지는 대목이 애절하다. 영화제에 초청된 김민자씨는 개막 무대에서 '목포의 눈물' '싱 싱 싱' '김치 깍두기'를 불렀다. 숙자와 애자는 없었지만 남편 토미 빅이 드럼과 실로폰 연주로 옆자리를 지켰다.

'다방의 푸른 꿈'은 마지막에 1963년 이난영과 김시스터즈가 함께 노래하는 영상을 재생한다. 아리랑이 서글프면서도 흥겹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