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도 모아라… 불황형 '티끌 財테크' 인기

인천에 사는 주부 최모(53)씨는 '노티투미'(Noti to me)라는 스마트폰 앱에 접속하는 일이 주된 하루 일과 중 하나다. 이 앱은 여러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광고를 한데 모아서 보여준다. 최씨가 노티투미에 하루도 빠짐없이 접속하는 이유는 앱에 올라온 상품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10포인트씩 적립이 되기 때문이다. 모은 포인트는 현금화(1포인트=1원) 해 특정 쇼핑몰에서 사용하거나 문화상품권 등으로 바꿀 수 있다. 노티투미에 올라온 게임 앱을 내려받으면 100포인트 이상이 적립되기도 한다. 최씨는 최근 5개월간 이 앱을 통해 3만 포인트가량을 모았다. 하루 평균 200포인트가량 모은 셈이다. 최씨는 "1년간 300만원을 은행 예금에 넣어도 손에 들어오는 이자는 3만원이 안 나오는 시대"라며 "가만히 있느니 푼돈이라도 모으는 게 심적으로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초저금리·불경기 버티는 '티끌 모아 재테크'

은행 예·적금 이자가 일제히 연 1%대로 떨어지고,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푼돈이라도 벌기 위한 서민들의 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10원 이하의 자잘한 포인트를 모으는 사람부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사람까지 모습은 다양하다. 돼지 저금통에 10원, 50원짜리 동전을 차곡차곡 모으는 식의 '티끌 모아 재테크' 전략으로 초저금리, 불경기, 고용불안 등의 위기를 버텨내는 것이다.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을 겨냥한 금융권의 '금리 미끼 상품'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OK저축은행은 작년 7월부터 2~5명이 함께 영업점에 올 경우 사람 수에 따라 금리를 0.1~0.5%포인트 더 얹어주는 'OK끼리끼리 정기적금'(1년 만기)을 운영 중이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끼리끼리 적금에 함께 가입할 사람을 모집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상품에는 출시 1년여 만에 7000명 넘는 가입자가 몰려 지난달 말 기준 누적 잔액이 404억원에 달한다.

모든 결제에 대해 0.1~0.5%가량의 소액을 깎아주는 이른바 '무조건 혜택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티끌'을 모으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0.1~0.5% 할인은 10만원어치를 사면 100~500원을 절약하는 셈이다.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는 "적은 액수라도 여윳돈을 굴릴 수 있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티끌 모아 재테크'가 직장인, 주부, 학생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 쓰고 버티는 경제, 희망 없어"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요령을 터득해 돈을 모으거나 절약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이모(26)씨는 최근 대학과 회사 동기 모임에서 손들고 총무 역할을 맡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회식 장소를 예약하고, 참가자를 체크하는 일이 귀찮지만 회식 때 자신의 신용카드를 긁어 마일리지를 적립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이씨는 매번 회식비를 카드로 결제한 뒤, 은행 계좌로 참가자들에게 돈을 받는다. 이씨는 "20만~30만원 긁어서 쌓이는 마일리지를 현금으로 따지면 1000~2000원 수준이지만 안 모으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중인 우모(28)씨는 최근 토익 책을 샀는데, 밑줄을 긋거나 채점을 하지 않는다. 문제도 연필로만 푼다. 깨끗이 쓰고 책방에 다시 팔아서 단 몇 천원이라도 건지기 위해서다. 인터파크는 현장 방문 중고책 매입 서비스인 '북버스'를 올해 초 출시했는데, 거래량이 매월 평균 2배씩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티끌 모아 재테크'의 확산을 저성장·불황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보고 있다. 세종대 김대종 교수(경영학)는 "사회 전체적으로 소득 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에 '티끌 모아 재테크'가 각광을 받고 있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제가 장기 불황으로 접어드는 가장 위험한 징후 중 하나인 만큼 임금 체계 개편이나 고용 문제 등을 개혁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